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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술값 못 냈으니 사형', 국립오페라단 국내초연작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오페라

by 이화미디어 2019. 7. 1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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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의 국내초연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오페라에 현대무용과 미디어의 결합으로 21세기 신개념 오페라를 보여줬다.ⓒ 박순영



'돈 주고 산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일 수 없다'

과연 그럴까? 지난 9일 프레스콜을 진행한 국립오페라단의 국내초연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의 대사 중 하나다. 1막에서 사기꾼 일당 베그빅 부인, 트르니티 모세, 패티 이렇게 세 명은 그물망 도시라는 뜻의 가상의 도시 '마하고니'를 건설한다. 알래스카에서 7년째 벌목일로 많은 돈을 번 지미, 잭, 빌리, 조는 이곳 여자들에게 돈을 쓴다. 이들 중 지미는 제니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2막에서 이웃 도시를 강타했던 허리케인이 마하고니를 비껴가자 마하고니의 모든 금지조항이 해제된다. 모든 것들이 흥청망청인 가운데, 잭은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져 죽고, 조는 트리니티 모세와의 권투시합에서 죽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미는 제니와 술 마시며 취하도록 놀다가 술값을 못 냈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3막의 온갖 비리가 난무하는 법정에서 지미는 친구가 죽어가는데도 막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구류 2일을 받지만, 술 2병 값을 못 낸 것에 대해서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21세기, 돈이면 학력을 사고, 신분을 사고, 사랑을 사고, 시간을 사고... 아니라고 부정할 수만은 없는 돈의 논리를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국내초연작 <마하고니...>는 탄탄한 성악과 현대무용, 영상과 빛 등 미디어를 통해 보여준다. 이 작품은 오페라가 더 이상 서양고전 클래식 공연이 아닌, 21세기 미디어를 총체적으로 아우른 예술임을 입증했다.

▲국립오페라단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2막 장면.
친구들이 죽는 가운데도 지미는 제니와 술먹고 놀기 바쁘다.ⓒ 박순영



이번 <마하고니...>는 국립현대무용단 안상수 감독이 연출과 안무를 맡았다. 윤호근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이 작년에 국립현대무용단의 <스윙> 공연에서 쿠르트 바일 <서푼짜리 오페라>의 '칼잡이 매키의 노래'가 무용으로 멋지게 해석되는 것에 감명받아 쿠르트 바일 작곡의 오페라 <마하고니...>를 함께 하자고 해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극 시작부터 현대무용으로 극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는데, 처음에는 다소 이질적으로 보였던 오페라 노래와 무용의 결합은 1막 중반쯤 되면 적응이 된다. 안성수 연출의 의도대로, 무용이 음악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무용이 성악노래에 부수적으로 딸려가는 것이 아니라, 각 장면시작에 성악보다 먼저 무용으로 음악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관객은 오케스트라 음악의 박동과 극의 분위기를 무용의 다채로운 동작과 표현을 통해 보면서 감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여기에 영상과 빛, 무대미술이 음악과 무용의 결합으로 생길 수 있는 단점을 한층 보완한다. 소녀의 기도 음악이 울려퍼질 때 천장에서 대형 피아노 건반이 움직이고, 흡사 볼링핀 같은 검정 그림자의 사람이 움직이는 영상 등이 펼쳐진다. 1막 중반쯤 되면 이 작품이 노래와 춤, 미디어의 결합으로 흔들리는 도시를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조명 마선영, 무대미술 의상 정민선).

브레히트의 대본은 무자비함이 판치고 터무니없는 20세기 현실을 도피해 황홀한 무정부주인 이데아로 인도하지만 결국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분명하게 던진다. 원작의 배경이 19세기인 것을 오늘날 대부분의 연출들은 21세기 현재로 옮겨놓는데 반해, 이번 연출은 17-18세기 바로크 시기 국가의 부를 절대가치로 여겼던 유럽 절대왕정 시기로 택해, 우아한 귀족 의상에 가려진 탐욕스런 내면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이 극에서는 실제로 사기꾼 우두머리 베그빅 부인의 의상이 가장 화려하다.



<서푼짜리 오페라>로 유명한 쿠르트 바일의 음악은 <마하고니...>에서도 극대화된다. 특히 소녀의 기도 등 익숙한 음악부터 다양한 재즈리듬, 벤조, 반도네온 등의 악기를 사용함과 동시에 12음음렬과 무조음악, 불협화음 등 이질적인 것을 한데 모아 브레히트 특유의 '낯설게 하기(Verfremdungseffekt)' 효과를 강조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완성됐는데, 당시 히틀러가 상연을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에서는 독일어 특유의 t, sch 등의 자음이 강조돼 매 맞는 느낌, 철저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8일 프레스리허설에서 성악가들의 풍부한 성량과 독일어 발음이 만족스럽고 시원하게 나와 눈길을 끌었다.

지미 마호니 역 테너 미하엘 쾨니히는 풍채만큼이나 호쾌하고 시원한 음색으로 탐욕으로 파멸하는 지미에게 공감하게 한다. 작년 국립오페라단의 <유쾌한 미망인>에서도 호연한 제니 스미스 역 소프라노 바네사 고이코엑사는 미모만큼이나 우아하고도 기품 넘치는 풍성한 노래로 마하고니 사회를 표현해준다. 극 시작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펼치는 베그빅 역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은 개성적인 연기와 탄탄한 실력으로 탐욕 사회의 여자두목 역할을 잘 표현했다.

바리톤 나유창(빌 역), 테너 민경환(잭 역), 베이스 이두영(조 역) 등 지미의 친구 3인방이 "황혼이 황홀하잖아. 단순한 삶이 멋진 삶이야"라고 3화음으로 노래하는 장면은 특히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패티 역 테너 구태환의 팽팽한 고음과 트리니티 모세 역 베이스 박기현의 중후한 저음도 서로 대조적으로 패티와의 3총사에 잘 어울렸다.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3막. 지미가 술값을 못냈다고
사형선고를 받는 곳이 마하고니이다.ⓒ 박순영




대개 오페라 합창하면 큰소리의 장중한 음색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작게 눈치보거나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노래하는 부분이 꽤 된다. 그란데오페라합창단(합창지휘 이희성)은 이런 부분도 섬세하게 연주했으며, 반대로 3막 마지막 장면에서 "죽은자를 살리진 못해"라며 호통치는 부분까지, 다채로운 색깔로 합창의 묘미를 살렸다.

또 국립오페라단의 작년 <코지 판 투테>를 지휘했던 지휘자 데이비드 라일랑은 전체 20장 각 시작부분의 독일어 해설을 직접 녹음했다. 이 해설이 아이들의 인형극이나 동화를 듣는 것처럼 친숙함을 줄 뿐만 아니라, 쉬운 것이 어려운 것을 비트는 풍자의 역할을 하는데 한몫 했다.

정통오페라 관객은 공연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무대를 가득 채운 현대무용과 미디어를 어색하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오페라'라는 총체예술이 서양 고전오페라로만 남을 것인지, 오늘날 이 땅에서 과연 어떤 미디어가 될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훌륭한 성악가들을 키운 것 또한 각종음반, DVD 영상 등 미디어의 힘이었으리라.

한편 2019년 국립오페라단의 라인업은 어마어마하다. 3월 새롭게 제작된 모차르트 <마술피리>, 5월 한국초연작 로시니 <윌리엄 텔>, 6월 콘서트오페라 <바그너 갈라>로 이미 상반기를 채웠다. 이번 한국초연작 바일의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7.11~14) 이후 최우정 작곡 오페라 <1945>(9.27~28)가 세계초연되고,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10.24~27)도 새 작품이다. 작년 제작된 훔버딩크의 <헨젤과 그레텔>(12.5~8)을 연말 앙코르 공연으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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