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혁 작곡가의 '짧아짐'은 영상과 음악에서 딜레이(시간지연) 간격이 점차 짧아짐을 응용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 박순영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클라리네티스트 김건주의 클라리넷과 전자음향을 위한 창작음악 시리즈 공연인 < ELECTRONICA-IV >가 지난 19일 삼성동 플랫폼엘에서 열렸다.

'Superimposition'이라는 부제로 진행된 이날 공연에서는 작곡가 여섯 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각 순서 전에 작곡가가 작품 설명을 하고 ELECTRONICA 공연을 응원하는 영상이 나와 작품과 공연에 대해 이해하기 좋았다.

첫 번째 유태선의 작품은 < Reflections of the Ego >였다. 전반부에 느린 클라리넷 선율에 멀티포닉스가 사용되고 전자음향으로 음이 더블링 되어 내면의 사유과정처럼 느껴졌다. 대조되는 후반부는 클라리넷이 여러 층의 딜레이와 오버블로잉에 사용되면서 빠른 리듬을 보였다. 어두운 곳에 있을 때 눈 내면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오는 '내안 또는 내부시각(Entopic)'이라는 현상을, 마음 속 초월적인 존재로 해석해 표현했다고 하는데, 진짜 눈을 감으면 여러 생각이 마음 안에 흐르다가 잠시 후 눈앞에 보이는 밝은 빛의 폭발을 곡을 통해 듣는 듯했다.

안성희의 < The Last Colony >는 환경문제를 다루며 사회 문제 동참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푸른 바다와 지구 속 페트병, 죽어가는 새의 모습에서 큰 위기감이 느껴진다. 영상과는 반대의 비트감 강한 음악과 클라리넷의 짧은 아르페지오 상행음으로 오히려 영상 속 지구상황의 아이러니를 꼬집는다. 작품스타일을 쉽게 비유하면, 다큐멘터리와 무용음악의 만남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는데, 클라리넷 선율이 진한 프리재즈의 임프로비제이션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에 음악의 페이드 아웃과 함께 영상 속에서 작아져가는 지구가 나오는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다음으로 현종찬의 < Clarinet and Computer2 >은 맥놀이(beat)를 소재로 했다. 처음에 클라리넷과 전자음향이 G음에서 한가닥으로 출발해 좀 있으니 서로 다른 음의 충돌이 들려왔다. 다분히 음향적 개념 자체로 접근한 작품인데다 맥놀이라는, 근접한 주파수끼리의 간섭에 의해 진행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음들의 미묘한 진행에 집중해야 했다. 최근 유행하는 Ambient music처럼 선적인 흐름 중의 미묘한 변화를 느끼다보면, 내면이 정화되는 느낌도 들고, 크고 작은 이슈보다는 그 세부적인 감각과 인지의 영역이 확장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김건주의 'ELECTRONICA-IV' 공연 올해 참여 작곡가들 ⓒ 김건주

인터미션 후 무대에 오른 세 작품은 본격적인 오디오비주얼 작품이었다. 오예민의 < Sonic Diplopia >는 복시(겹쳐 보임)을 주제로 machine learning(기계학습) 방법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김건주가 노트북에 실시간 생성되는 악보를 연주하는 모습을 노트북 카메라가 촬영한다. 미간을 약간 찌푸려 집중해 연주하는 얼굴 앞모습을 점들이 모여 표현하니 색다른 분위기가 났다. 이 얼굴이 중앙으로부터 위, 아래 대각선 등으로 아홉까지 순차적으로 등장하는데, 시간차만큼 음악도 전자음향에서 딜레이되어 겹쳐 총 아홉 층의 협주가 되고 있었다. 복시를 가진 사람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이 이와 같을까, 겹침을 해석하려면 다른 인지적인 처리가 필요할까, 궁금하던 차에 펑 소리가 나면서 무작위로 움직이던 이미지가 가루형태로 흩날리고 여운을 남기며 작품이 끝난다.

인터뷰 영상에서 자신을 '좋은 곡을 쓰고 싶어하는 작곡가'라고 소개한 임승혁 작곡가는 < 짧아짐(verkurzt) IV >이라는 오디오비주얼작품을 선보였다. 먼저 클라리넷의 주제음이 연주되고, 이번에는 연주하는 김건주의 서 있는 옆모습이 작곡가의 컴퓨터 단에서 촬영되어 무대 벽에 위로 좁아지는 사다리꼴을 순차적으로 이루며 서로 마주보게 된다. 그리고 위로 외치고, 두드린 다음 아래로 하행하는 주제선율이 전자음향으로 딜레이 되며 여러 번 반복된다. 점차로 딜레이가 겹치는 시간이 좁아지고 피치쉬프트로 음폭도 여러 층 겹쳐 복잡해져가는 재미가 있었다. 클라이맥스에서 주제선율이 숨소리와 플라터 텅잉, 키클릭 주법으로 연주되며 시원한 파도처럼 들려오고 마지막은 고음의 트릴과 금속성의 변조음이 함께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오랫동안 밝은 전자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조진옥 작곡가는 < LoopUp >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전 일렉트로니카 공연에서 < PopUp I, II >라는 작품을 한 바 있는 밝은 전자음악 시리즈 작품이다. 연주 전 영상에서 이 설명을 들으니, 많은 현대음악, 전자음악이 보통의 대중음악과는 다른 미분음, 불협화음 등으로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움이 있기에 조 작곡가는 이 점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해 여기에 작업의 방점을 찍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작곡가가 직접 만든 곡선 그래픽이 음악의 그루브처럼 실시간 움직이고, 전자음향에 클라리넷 샘플링, 그리고 4/4박자의 테크노풍 쿵따라 리듬에 클라리넷은 오르내리는 싱코페이션 리듬을 분다. 마지막 클라리넷의 멀티포닉스 포효로 신나는 클라리넷 디스코가 끝난다.

이번 공연에서 작품과 연주 외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곡 설명 앞에 작곡가가 공연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작곡가 여섯 명 모두 이구동성으로 < ELECTRONICA > 공연을 응원했다.

조진옥은 ELECTRONICA 공연을 4회째 모두 참여했다고 밝히면서, "연주자가 전자음악을 이끄는 독보적인 연주회"라고 언급했다. 매번 관객으로 왔다가 처음 참여했다는 임승혁은 "늘 열정적으로 연주하시고, 또 연주자로서 현대음악에 매진하기 쉽지 않은데, 거기다가 전자음악이라는 좀 더 복잡한 장르에 투자한다는 게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종찬 작곡가는 인터뷰 영상에서 "일렉트로니카가 한국전자음악 교육 역사에도 큰 영향 끼칠 것"이라 말해서, 공연 후 다시 물어보니 "악기, 클라리넷과 전자음악에 대한 레퍼런스가 많이 쌓여야 (교육도 그것을 기반으로 분석과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답변을 했다. 즉 좋은 현대음악, 전자음악의 저변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많은 창작이 있어야 하고, 그것의 구체화에는 연주 중심의 전문성이 수반되어야 함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 김건주 'ELECTRONICA-IV' 포스터 ⓒ 김건주

 

다음은 클라리네티스트 김건주와의 일문일답.

- 일렉트로니카 공연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기부터 전자음향과 클라리넷이 함께 만들어내는 다양한 가능성에 흥미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전자음향이 포함된 클라리넷 독주곡들에 대한 통찰과 연주제안을 담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색다른 매력을 알리고자 처음으로 클라리넷과 전자음향을 위한 콘서트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4회에 이르게 되었네요."

- 이번 작품들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매 시리즈마다 개성 있는 작곡가 분들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올해 역시 다양하고 다채로운 성격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오예민 작곡가의 Sonic Diplopia 작품은 Machine learing, 즉 기계학습을 이용한 곡 이었는데요. 컴퓨터에게 음악의 정보를 알려주어 컴퓨터는 학습을 하게 되고, 가능할 법한 다음 음을 계산하여 악보에 써 주게 됩니다.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악보가 때마다 달라서 그걸 연주하는 묘미도 있고, 이것이 음악을 완성하고 점층되어 곡이 완성되는 과정이 재미를 줍니다."

- 코로나19 와중에 공연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이 있나요.

"공연은 관객과 함께 호흡을 해야 하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객석이 많이 축소되어 아쉬웠어요.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였지만 공연장의 느낌을 다 전달 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코로나가 빠른 시일 내에 끝나서 위축된 공연계가 다시 활성화가 되었으면 합니다."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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