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27회 뮤지콘 작곡발표회 '표현과 침묵'

클래식 2021. 10. 16. 13:31 Posted by 이화미디어

뮤지콘 앙상블 '시사'(2021). 파편화된 시어와 참치캔 등 일상물건의 소리가 섞여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진 = 박순영)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제27회 뮤지콘(예술감독 김보현) 작곡발표회 <표현과 침묵>이 10월 9일 오후 5시 부산예술회관 전시실(3층)에서 열렸다.

2009년 창단해 연 2-3회의 작품발표회로 부산의 현대음악과 표현예술의 큰 주춧돌이 되어온 뮤지콘의 이번콘서트는 아방가르드 뮤직에서 필수적으로 동행하는 침묵의 다양한 표현양식을 감상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이 날은 뮤지콘의 중심이며 10월 첫 주 뮤지콘 국제교류음악회와 세미나에서도 활약한 재독작곡가 게르하르트 슈태블러, 심근수를 비롯해 뮤지콘 대표 김보현, 뮤지콘의 정신적 맥이자 전위예술의 선구자인 백남준, 묘사적 표현음악의 대표 작곡가인 까미유 생상, 무조 표현주의의 아르놀트 쇤베르크, 그리고 양영광, 방희연, 권유미, 김서희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첫 곡 김서희의 클라리넷, 첼로 이중주 <페르소나>(2021)는 간헐적인 움직임의 두 악기가 서로를 반영하며 밀고 당기는 제스처가 특별했다. 작은 점과 같은 클라리넷 (유지훈 연주)음으로 시작해 음표는 음 간격의 밀도를 높여가며 첼로(신윤경) 역시 점차 격렬한 선율로 두 자아의 관계를 확립한다. 권유미의 바이올린(양은정) 독주 <경계 너머로>(2021)는 주제의 개방현 솔레라 음이 영롱하고 맑은 대자연 같다. 이로부터 빠른 음표의 중음주법으로 뻗어나가 복잡해지며 경계 너머를 추구한다. 

샤를 까미유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제8번 ‘귀가 긴 등장인물’>(1900)은 바이올린 과 비올라가 강렬하고 짧은 E음 하모닉스와 G현에서의 반음하행 음이 연결된 주제를 서로 주고받는다. 노새의 울음소리를 표현한 것이라 하는데, 오히려 노새의 긴 귀를 아래에서 위로 다시 아래로 그린 것 같은 짧고 익살스런 곡이었다.

방희연의 첼로 독주곡 <분명한 것들>(2021)은 제목과 배치되는 음악형태가 주는 의문점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들릴 듯 말 듯한 활의 운동과 피치카토. 분명 무언가를 연주하고 있는데 우리 귀로는 잘 안들릴 정도로 아주 작다. 하지만 첼로주자의 왼손은 분명 여러 음을, 오른손은 데타셰, 스타카토, 피치카토 등 사실 그 침묵의 시간동안 무척이나 바빴다. 그래, 분명했다. 그래서 관객의 박수소리가 대비적으로 오히려 크게 들렸다. 

 

침묵이 표현될 수 있을까? 다양한 침묵이 '뮤지콘'에는 있었고, 그 함께하는(Con-) 에너지는 대단했다. (사진 = 박순영)

 

뮤지콘 앙상블(김준수 이준 황원진)이 연주한 <시사>(2021) 또한 임팩트있었다. 말은 자음과 모음이 해체되어 강렬하게 발음되고, 음료수캔, 참치캔, 우쿨렐레는 타악기가 되었다. 연주자 세 명은 객석 뒤 뮤지콘 대표 김보현의 지휘에 맞춰 원천석 시의 시어를 분절시켜 격렬하게 내뱉는데, 그 겹침과 연결이 퍼진 갤러리 공간의 울림은 오히려 조화로워 보였다.

아르놀트 쇤베르크 <달에 홀린 피에로, 제7번 '병든 달'>(1912)은 야밤 폐병환자의 공상적 사랑을 묘사한 작품인데, 클라리넷의 밤처럼 스산하면서도 몽환적인 선율과 소프라노(최주희)의 결의에 찬 표정과 명징한 독일어 노래가 잘 연주되었다. 양영광의 비올라(윤솔샘)를 위한 <흐름 속의 울림, 공간 속 잔향의 흔적>(2021)은 구체적인 제목 그대로 음악이 잘 묘사되었다. 크레센도 지속음의 일렁거리는 끝에 쥬테와 피치카토의 잔음표가 흔적처럼 붙어 공간에 파장을 일으킨다. 소리의 연결이 매우 사유적이고 흥미로웠다. 

 

김보현의 <밤과 그림자>(2021)였다. 클라리넷 연주자(유지훈)가 이동하며 연주회장 사방 벽에 붙은 54개의 음절편이 적힌 그래픽 악보를 불었다. 발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로 천천히 오버블로잉 운지가 세세히 적힌 악보를 연주한다. 아주 작은음량에서 낮은음을 기본음으로 해서 발생되는 고음의 오버블로잉은 빛에 늘 수반되는 그림자를 나타냈다. 한밤중으로 시작해 어슴프레한 여명이 비추이기까지의 각 시간대별 그림자나 하늘의 밝기 정도가 느껴지기도 했으며, 혹은 두 시간 간격으로 '자시', '인시' 등 십이간지 시간의 변동이 연상되기도 했다. 

슈태블러의 현악삼중주(양은정 윤솔샘 신윤경) <작별(Abschiede)>(1993)이었다. 바이올린의 C#음 강렬한 바르톡 피치카토로 시작해 악기간 연결되는 지속음과 끝 마무리 음의 연속이었다. 중간에서 끝으로 도달하는 3분간은 간헐적 피치카토 구간으로 음의 탐미를 추구하는 음향이 흥미로운 구간이었다. 마지막에 높은 E음의 하모닉스와 낮은 G현의 바르톡 피치카토가 공간을 울린다. 작별에서 오는 슬픔이나 회고보다는, 한 음구간을 작별하고 다음 음구간으로 도약하는 무수한 작별의 작업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이올린은 소리없이 허공으로 올라가 마지막에 굉음을 내며 부서졌고, 참치캔들은 오늘은 반찬이 아닌 소리를 내는 메인 디쉬가 되었다. (사진 = 박순영)

 
백남준의 <하나>는 악기의 제 역할에 대해 주는 메시지가 큰 작품이었다. 퍼포머 이준의 무표정한 얼굴은 앞 일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은 채 바이올린을 수평에서부터 점차로 들어올린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순간 눈 앞에 놓인 돌 위로 바이올린을 내리친다. 음을 연주하지 않고 부서진 바이올린은...오히려 온몸으로 정적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부터 응축된 에너지를 마지막에 하나로 터뜨렸던 것이 아닐까 한다.

심근수의 <모퉁이에서>는 현악삼중주 곡으로 술 타스토의 현대주법으로 웅얼거리며 서로 모였다 펼쳐지는 현악기들이 마치 투명한 음색의 플루트처럼 들렸다. 모퉁이에서(Auf der Kleinseite)라는 제목으로는 뾰족한 모서리를 상상해봤으나, 오히려 음색과 음운동에서는 세 개의 입자가 중심력이나 서로의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사방으로 움직인 경계가 모퉁이를 만들고 그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 그런 모습이 그려졌다. 

침묵은 음 사이의 공간일 수 있고, 드높은 도약 전에 필요한 에너지 저장 시간일 수 있다. 이날 뮤지콘의 <침묵과 표현>은 우리가 침묵을 한다면 무엇을 위해 침묵하고, 그 후에는 무엇을 정확하게 말하게 되는지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수많은 주파수와 침묵이 무수한 경우의 수로 섞여 만드는 음악이라는 거대한 에너지는 그래서 참으로 다양하고, 할 때마다 즐거운 도전일 것이다.

또한 필자에게 이 코로나 기간 먼 곳으로의 10월 여행은 또 하나의 도전이자 망설임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페이스북으로만 보던 부산 뮤지콘의 집중된 순간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음악회 관람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는 침묵의 위대함을 배우고, 언양식 불고기, 부산영화제 관람까지로 이어질 수 있었다. 뮤지콘 작곡가와 연주자께 박수와 감사를 보내며, 앞으로 부산과 이 땅의 아방가드르 예술을 지키는 계속적인 행보를 깊이 응원한다.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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