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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유니버설발레단 '나초 두아토 - 멀티플리시티' "춤과 음악은 영혼을 치유하는 음식과도 같다"

발레

by 이화미디어 2014. 4. 2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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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바흐가 여인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표현하며 무척 아름답다. ⓒ 유니버설발레단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유니버설발레단(단장 문훈숙)의 <나초 두아토 - 멀티플리시티>가 LG아트센터에서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공연되었다.

<나초 두아토 - 멀티플리시티>는 창단 3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이 <나 플로레스타>(2003), <두엔데>(2005)에 이어 7년 만에 세계적인 안무가 나초 두아토와 함께 하는 세 번째 작품이다. 많은 모던발레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온 유니버설발레단이지만, 이번 <멀티플리시티>처럼 2시간짜리 전막 모던발레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기대를 모았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음악에 춤을 붙인 <나초 두아토 - 멀티플리시티>는 바흐의 생애가 춤으로 녹여진 과연 기대만큼 명작 중의 명작이었다.

대위법으로 ‘푸가’라는 엄격한 형식을 완성한 바흐의 음악은 그 어떤 음 하나도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이 없다. 때문에 그러한 엄격한 음악에 춤을 맞춘다는 것은 고도의 감각과 기술을 요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나초 두아토 - 멀티플리시티>는 바흐의 수많은 음악 중 나초 두아토가 고심하며 선별한 23개의 음악과 춤만으로 특별한 줄거리 없이도 인간 바흐의 일생을 드라마적으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주요 캐릭터는 바흐와 여인, 흰 가면을 쓴 여인까지 세 명인데, 여인은 첫사랑인 음악을 상징하고, 흰 가면의 여인은 바흐의 음악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존재 혹은 죽음을 의미한다.

1부 ‘멀티플리시티(Multiplicity, 다양성)’의 음악은 프롤로그와 1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말 그대로 바흐의 다양한 음악을 독무, 2인무, 군무 등 다양한 동작과 구조로 표현했다. 바흐의 일생은 그가 살던 장소별로 총 다섯 시기로 구분되는데, 1부는 바흐의 네 번째 시기인 괴텐 시대(1717~1723)에 궁정악장으로 지내며 작곡한 기악음악들 위주로,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며 춤 역시 경쾌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프롤로그에서는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 BMW 988 Prologue>의 단아한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바흐(예브게니 키사무디노프)가 등장한다.

▲ ‘칸타타 BWV 205’ 중 ‘AEOLUS’는 무용수들이 오케스트라 악기가 되어
활기차고 다양한 동작으로 표현한다. ⓒ Fernando Marcos


<칸타타 BWV 205 중 AEOLUS>는 바흐가 궁정악단을 지휘하는 모습을 역동적인 춤으로 표현해 무척 인상적이다. 바흐의 지휘 아래 18명 남녀 무용수가 오케스트라의 악기처럼 일사불란하게 바로크적인 역동성과 힘이 느껴지는 음악에 맞추어 다양한 동작을 펼쳐낸다. 각자 ‘Z'자형의 의자 위에서 의자를 팔로 지탱하고 다리를 모아 요리조리 움직이기도 하고, 몸을 쫙 펴 위로 점프하기도 한다. 음악의 빠른 템포를 쫓아가기 힘들 텐데 결코 느려지거나 뒤처지는 법이 없다. 음악에 맞추어 춤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춤 자체가 음악을 보여주는 것 같은 부분이다.

유명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 중 ‘서곡’에 맞춰 바흐가 첼로를 연주한다. 바흐가 여인(김나은)을 첼로삼아 연주하는 모습이 백남준과 샬롯 무어만의 첼로 퍼포먼스가 연상되기도 한다. 슬러 부분에 맞추어 여인은 몸을 숙였다 폈다를 반복한다. 바흐는 활로 여인의 몸과 다리, 팔, 가슴을 세세하게 켜고, 여인은 앉았다 일어났다 몸을 굴렀다가 다시 바흐를 껴안고 첼로가 된다. 무척 에로틱하면서도 바흐의 음악에 대한 사랑이 춤동작으로 잘 표현되는 연출이다.

<관현악 모음곡 2번 B단조>에 맞추어 두 남성(진헌재, 김태석)이 상의는 벗은 채 18세기 바로크의 패치코트를 입고 듀엣을 추다가 후반부에는 바흐와 함께 트리오로 춤을 추는 장면도 희화적이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G장조 BWV 1048>에서는 속사포같이 빠른 템포의 16분음표의 질주를 빨강, 초록, 파랑의 옷을 입은 10명 무용수들의 빠른 동작의 군무로 표현하며 무척 파워풀하고 다양하다. <4대의 쳄발로를 위한 협주곡 BWV 1065>에 맞춰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칸타타의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피아노 협주곡 5번 F단조 BWV 1056> ‘라르고’에 맞추어 흰 가면을 쓰고 검정 옷을 입은 ‘죽음’ 캐릭터가 바흐와 춤을 춘다. 다음으로 <2대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BWV 1043>에서는 바이올린 ‘활’이 펜싱 ‘칼’로 비유되어 두 대의 바이올린 사이의 힘의 충돌과 균형이 남성들이 펜싱 춤을 추는 장면으로 표현되며 인상을 남겼다. <칸타타 BWV 115>중 ‘미뉴에트’에서는 무대 왼쪽의 기다란 직사각형 천에 푸른 조명으로 그 뒤에 그림자 형태로 여자 무용수들의 춤이 단아하다.


▲ ‘칸타타 BWV 21’에서는 바흐와 여인, 흰 가면의 ‘죽음’ 캐릭터로
바흐 말년의 고뇌가 표현된다. ⓒ 유니버설발레단



2부 ‘침묵과 공(空)의 형상(Forms of silence and Emptiness)’은 바흐의 말년과 죽음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로, 1부의 경쾌한 분위기와는 대조된다. 음악은 특히 푸가 위주로 엄숙함과 죽음의 분위기가 흐른다.

바흐는 9살에 아버지를, 10살에 어머니까지 잃고, 자신의 20명의 자녀 중 10명은 영아 때 잃었고, 그는 65세 죽기 전 시력까지 잃게 된다. 1부가 바흐 전성기의 다양하고 유명한 음악에 영감을 받아 활기차고 역동적이라면, 2부는 푸가기법 연구로 더욱 엄격해지고 복잡해진 음악과 그에 따른 어두운 인생의 면을 춤으로 표현했다.

<푸가의 기법 BWV 1080>중 ‘Contrapuntus'가 흐르는 가운데 검정옷의 네 명의 남자무용수들이 음악의 각 성부인 듯한 대위법적인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 538>은 검정색 무사 같은 옷을 입은 7명의 남자무용수들의 장면인데, 맨 마지막에 한 무용수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몸을 휘날려 나머지 여섯 명을 가로질러 무너뜨리는 모습이 음악의 장렬한 끝과 닮아 있다.

<합창곡 Mach's mit mir, Gott, nach denir Gul>에서는 여인과 바흐의 춤이, <칸타타 BWV 21>에서는 바흐와 여인, 죽음(홍향기)까지 세 명의 춤이 이어진다. <칸타타 BWV 21> 중 ‘탄식, 눈물, 근심, 고통’에서는 두 명 남자무용수(한상이, 진헌재)의 춤으로 충돌하고 갈등하는 바흐의 내면을 표현한다.

2부의 마지막 두 대목은 바흐의 마지막 작품인 미완성 푸가를 배경으로 바흐의 마지막 죽음을 표현한다. <푸가의 기법 BWV 1080> 중 '아리아'에서는 무대 오른쪽에 천장으로부터 내려온 푸른색 띠가 회전하고 남녀 18명의 군무와 함께 바흐는 고뇌하더니 결국 흰 가면의 ‘죽음’과 춤을 춘다.

▲ ‘푸가의 기법 BWV 1080’ 중 ‘Final Fugue'는 오선지를 표현하는 대형 구조물 위에서
무용수들이 음표처럼 위치해 움직이면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 유니버설발레단

<푸가의 기법 BWV 1080> 중 ‘Final Fugue'는 장엄함에 숭고함까지 더해진다. 무대뒷벽에 오선지 형태 구조물에 무용수들이 각각 파란 붉은 조명을 받으며 음표가 되어 서 있다. 무대 오른쪽 병상에 누운 바흐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오선지에 그리며 4성부 푸가의 각 성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도록 마지막까지 형상을 그려낸다. 위대한 작곡가 바흐의 최고 역작을 춤으로 의인화하며 ’푸가‘기법을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데, 말년에 시력을 잃은 바흐가 상상했을 음악의 모습이 무대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바흐의 위대한 음악에 나의 ‘더러운 손’을 대기가 죄송하다. 바흐가 화를 내지 않기를 바라며, 바흐와 대화했다”고 나초 두아토는 말했다. 스페인 출신으로 이전에 바흐의 음악으로 안무를 해본 적이 없는 나초 두아토가 어떻게 이토록 음표 하나하나까지도 무용과 일치되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바흐에 대한 그러한 존경의 마음,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마음이 받은 선물이 아닐까 한다.

나초 두아토는 최근 세월호 사건에 대해 “춤과 음악은 영혼을 치유하는 음식과도 같다고 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부디 작은 치유가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위로의 말을 문훈숙 단장의 공연시작 전 해설을 통해 전하기도 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차기작품으로 6월 13일부터 17일까지 <지젤>을 공연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9월 27일부터 28일가지 <발레 춘향>을, 송년에는 12월 19일부터 31일까지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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