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바야흐로 대림 제1주일이다. 세상사의 달력은 연말로 새해가 한 달 남았음을 알려주지만, 가톨릭 전례력으로는 예수탄생을 준비하며 지금 벌써 새로운 해가 시작된 것이다.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박영희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난 11월 20일과 21일 3회 공연을 펼졌다. 현장관객으로는 수많은 음악, 공연관계자와 염수정 추기경과 가톨릭 관계자들이 참석해 귀한 공연에 감동의 마음을 전했다.

한국 최초 김대건 신부를 '피의 순교자'라 한다면 2대 신부인 최양업 신부는 '땀의 순교자'로 통한다.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은 12년 동안 매일 7,000리길을 걸으며 갖은 박해 속에서도 한국 천주교를 위해 헌신한 최양업 신부의 이야기다. 

독일 현대오페라 같은 어둑함과 천상의 빛이 공존하는 투명하고도 깊은 음향에 한국전통 가락이 녹아난 선율선의 우리말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이었다. 뫼비우스 띠 모양의 계단무대는 끝없이 순환하는 모습이 바벨탑보다 더 높은 인생굴레처럼 보인다. 최양업 신부(테너 김효종)가 유학길에 탔던 배가 되기도 하고, 최신부의 어머니와 신자들이 박해받는 감옥이 되기도 했다. 

1막 초반, 어린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이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는 장면에 눈시울이 시큰하다. 최신부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메조소프라노 양계화)가 천주학을 믿은 죄로 막내아기 스테파노를 안고 감옥에 갇혀있을 때, 다른 여인들이 애 젖을 먹여야지 천주학만 믿으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삼중창 노래는 고음의 현대음악어법인데도 서로의 선율과 가사가 방해되지 않고 잘 들렸다. 

이번 극은 최양업 신부의 서한을 바탕으로 했기에 사건의 극적 전개보다는 최신부의 독백 노래를 통한 내면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때문에 1막 5장 최신부가 조선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부분은 우수어리고 처연한 클라리넷 소리와 함께 최신부의 기도가 강하게 노래되는데, 테너 김효종은 절절한 음성으로 한없는 고행길과 주님, 조선 동포를 향한 믿음과 사랑을 잘 표현해 주었다.

배우 이윤지

 
작품 전체 노래선율에서는 천주교 연도의례도 닮아있었다. 조선후기 기제사 형태를 천주교에서 수용하였고, 또한 최양업 신부가 당시 '사향가'를 지을만큼 우리 전통곡조에 서양음악을 접목한 최초의 선구자였음을 오페라 <길 위의 천국>으로 드러내기 위함으로 느껴졌다. 이런 형태는 주로 합창에서 잘 보였는데, 1막 5장 상해 장가루 성당에서 귀국 전, 2막 사향가 후 여자 교우들의 합창, 9장 십자가의 길 등에서 노이오페라코러스(단장 박용규)가 깊은 울림으로 기가 막히게 불러주었다. 

이번 오페라에는 또 한가지 특별함이 있었다. 바로 영화배우 이윤지가 낭랑한 목소리로 해설을 하고, 무용수 두 명의 몸짓과 더불어 나무정령같은 초록색 의상을 입고 이들 세 명은 Evangelist, 즉 전도사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최신부가 포교지로 향하고 교우촌을 방문하고,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가 순교하는 장면의 의미를 마치 천주교 복음시간처럼 낭송으로 형식화한 것이다.

이처럼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은 천주교의 포교와 박해, 순교의 사건을 짚으면서 그것을 관통하고 연결시키는 최신부의 신앙심을 내면 깊숙이 표현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그 정신적 흐름처럼 선적인 선율 때문에 음악적인 역동성, 즉 저음의 빠른 움직임에 의한 사건의 긴박한 전개나 재미는 확실히 적었다.

보통의 창작오페라였으면 2막 8장 바르바라(소프라노 장혜지) 의 죽음, 기해박해에서 최신부의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바리톤 김종표)와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메조소프라노 양계화)의 순교는 아마 더욱 극적인 장면묘사와 일반인의 귀에 구체적으로 들리는 음악과 대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길 위의 천국>에서는 해설자가 끝없이 개입하고 의미를 다지고, 다지고, 또 다진다. 바로 성서를 읽을 때의 따옴표 부분 "...가 말했다"처럼 말이다.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은 최양업 신부 연구 권위자인 류한영 베드로 신부가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대본에 참여했고, 벽산희곡상의 고연옥 작가가 대본을, 독일과 한국에서 활발히 활발하는 이수은 연출가가 연출을, 지중배 지휘자가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박영희 작곡가는 2005년 독일 브레멘 국립 예술대 재직 당시 최양업 신부의 열여덟편의 서한(편지)을 알게 되고 욕심과 명예욕을 온전히 비운 최 신부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서한집에 나오는 라틴어 가사로 성악곡 '주님, 보소서(Vide Domine)'를 작곡한 박 작곡가는 이듬해 최신부가 활동했던 근교 배티 성지(청주일대)를 방문하는 등 지난 16년 동안 기도로 이번 역작 오페라를 만들었다. 

신앙과 기도의 길. 천국은 그 끝에 영광되게 도하는 곳이 아니라, 바로 그 길 위에 있음을 알 것도 같다. 아마도 그래서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은 음악이 장면과 감정을 반주로 화려하게 부각시키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기도'를 조용히 따라가주었나보다. 더불어 멋지게 만든 <길 위의 천국> 프로그램북에서 이용숙 드라마투르기의 '비움의 매혹'이라는 표현이 어렴풋이 다가온다.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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