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막에서 몬테로네(서동희) 백작이 자신을 조롱한 리골레토(조지 가닛제)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올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베르디의 오페라 공연이 많다. 지난주 솔오페라단의 '나부코'에 이어 이번주 수지오페라단(단장 박수지)에서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1월 22일부터 24일까지 '리골레토'를 공연했다. 비슷한 시기 국내 오페라단의 베르디 공연이어서 서로 대비되는 가운데, 2011년에도 공연된 바 수지오페라단의 리골레토는 오페라 감상의 감동과 기쁨을 다시한번 선사했다.
'리골레토'는 이탈리아의 국민작곡가로 칭송받는 쥬세페 베르디(1813~1901)의 작품으로 아름다운 선율과 화성, 다채로운 리듬이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과 함께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 속에 자주 연주되는 레파토리다.
어떤 오페라단이 공연을 해도 왠만해서는 리골레토를 잘 못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야기구조가 간단하고 음악이 아름답다. 최고 레벨이 아니더라도 보통이상의 단체와 성악가들이라면 관객에게 '리골레토'라는 곱추아비의 슬픈 이야기에 공감을 못 시킬 수가 없다.
어릿광대 곱추 리골레토가 딸이 바람둥이 공작에게 희롱당하자 분노에 차 공작을 죽이려 하지만 결국 딸이 죽게 된다는 내용과, 때론 긴박하게 때론 애절하게 장면을 설명하는 음악에 정말 하루밤을 꼴딱 새며 읽는 소설처럼 깊은 몰입감을 준다.
'리골레토'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으로 베르디는 위대하고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라는 것이다. 수지 오페라단의 리골레토 역시 베르디의 고마움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며 그들의 선택을 성공으로 이끌어주었다. 비록 일부 출연진은 2011년 출연진 그대로, 무대도 국내 무대디자인 하면 첫손으로 꼽는 이학순 디자이너의 것 그대로였지만, 꼭 매번 새작품, 새무대, 새로운 배우일 필요는 없다.
이번에는 어느 작품을 할것인가라는 문제는 연주가라면 매번 겪는 문제지만, 그 중에서도 오페라단이라면 참으로 쉽지 않다. 합창단에게 새로운 레퍼토리 연습시켜야지, 주역배우 캐스팅해야지, 돈은 또 얼마나 드는가.
▲ 1막에서 무도회를 연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스테판 포프)이
체프라노 백작부인(김라경)을 유혹하고 있다.
관객에게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일 의무, 좋은 작품을 보여줄 의무와 예산과 시간 상황 사이에서 결국은 예전에 한번 했던 안정성 있는 레퍼토리로 돌아간다. 사실, 어떻게 매번 새로운 작품을 할 수 있겠는가. 1년에 큰 공연이 5-6회 정도라고 하면 이 중 새로운 레퍼토리는 2-3개 정도로 하는게 통상적이다.
한 단체에서 새롭게 익힌 작품은 재공연하며 주요 레파토리로 해 둘 필요도 있고, 여러 이유로 오페라 쪽에서는 한 작품이 2년만에 다시 공연되는 경우가 많다. 발레도 마찬가지이지만 워낙 레퍼토리가 오페라에 비해 적은 관계로 발레는 주요 레파토리가 고정적으로 1년만에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여하튼 수지오페라단의 이번 리골레토는 2년만의 무대가 주는 안정감과 자신감을 충분히 활용해 베르디 탄생 200주년 기념이자 송년무대로의 역할을 알차게 구성했다. 또한 2013년 8월 '갈라 프리미어 오페렐리아' 오페라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럽의 젊은 오페라 연출가 '마리오 데 까를로'의 연출로 인물내적 표현과 시대상을 잘 표현해 더욱 깊이있는 작품이 되었다.
1막은 이학순 디자이너의 무대방식 중 트레이드마크인 궁정건물의 수직구조를 밑에서 올려다 본 형태로 중세 이탈리아의 귀족의 권력과 향락에 대한 상징이 역시나 효과적이었다. 단지, 이학순의 무대가 한번 사용되면 꽤 계속적으로 사용되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말이다. 합창단은 군중으로서의 자연스런 몸짓과 노래로 주역배우들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었으며, 무용 역시 성악가들만 있으면 심심해질 수 있는 합창장면 등을 잘 메꿔 처리해주었다.
1막에서 주요배역들도 무난하게 역할을 잘 표현했으며 그 진가는 2막 3막에서 더욱 드러났다. 주역들로 초청된 외국성악가들은 세계적 명성답게 연기나 성량, 테크닉 면에서 훌륭했다. 23일 공연에서 리골레토 역의 바리톤 벤트세슬라프 아나스타소프는 어릿광대 곱추로서의 비애와 딸을 생각하는 아비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연기와 노래가 좋았다.
▲ 2막에선 리골레토(조지 가닛제)가 딸 질다(엘레나 모스크)에 대한
애정이 절절하다. 둘의 듀엣이 아름답다.
질다 역의 소프라노 다니엘라 브루에라는 대사 중 "천사가 내려온 것 같다"고 하는 말 그대로 정말 사랑스러운 외모와 성량, 기량이었다. 리골레토와 질다의 듀엣도 부녀의 정과 애틋함이 절실히 느껴지는 연기와 호흡이 좋았다.
만토바 공작 역의 테너 리카르도 미라벨리는 바람둥이의 모습을 경쾌하고 시원한 고음으로 잘 표현해 호감을 주었다. 특히 3막에서 그 유명한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 아리아를 부르자 박수가 터져나온다.
주역들의 호연과 열창, 노래가사에 의한 인물들의 감정이 다채로운 리듬과 선율,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성이 변하며 전달된다. 1막 2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리골레토를 향해 죄여오는 저주의 공포를 상행 하는 16분음표 시퀀스로 표현하는데, 반음계로 서서히 올라가다가 갑자기 도약하며 포르티시모로 확 터지는 부분은 정말 불안한 순간과 그 심정을 정말 잘 표현해주고 있었으며, 마음속으로 "정말 위대한 천재 베르디야"를 외치게 해준다.
한국성악가들도 호연을 펼쳤다. 변승욱은 비록 청부살인업이지만 직업에 충실하고 여동생 막달레나를 끔찍이 아끼는 스파라푸칠레 역을 훌륭히 소화하며 저음의 충실한 베이스 목소리를 냈다. 막달레나 역의 메조소프라노 최승현 역시 부드럽고 편안한 톤으로 요염한 동작과 함께 막달레나를 잘 표현했다.
3막 스파라푸칠레의 주막 장면에서 리골레토가 복수를 결심하고 스파라푸칠레-막달레나, 리골레토-질다가 함께 노래부르는 장면은 각 성악주자의 음성과 가사가 잘 들리면서도 전체 4명의 하모니가 훌륭했으며, 다시한번 베르디의 탁월함을 느낄 수 있다.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작의 살인청부를 스파라푸칠레에게 부탁하지만, 만토바 공작을 좋아하는 막달레나의 부탁으로 스파라푸칠레는 새벽에 그곳을 지나가나는 첫 번째 사람을 죽이기로 하고, 질다가 죽게 된다. 마지막에 딸의 죽음을 알고 리골레토가 "내 딸이 내 복수에 희생되다니"라며 부르는 노래가 단조가 아니라 장조의 평온하고 밝은 분위기인 것이 역설적이어서 인상적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귀족을 조롱하고(1막) 공작을 죽이려는(3막) 어릿광대 리골레토의 천박함과 잔인함이 연출의 의도만큼 잘 드러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23일 공연에서 리골레토 역의 벤트세슬라프 아나스타소프는 물론 좋은 연기였지만 이 모든 리골레토의 성격을 딸에 대한 부성애로 포괄시키는 고상한 연기를 펼쳤다. 딸 질다를 납치해 간 만토바 공작을 죽이려는 장면에서 리골레토의 뼛속 깊숙이 자리한 귀족계급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는 했지만, 하층민 어릿광대로서의 비열함이나 천한 속성이 뚜렷이 부각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2013년을 베르디 오페라로 성공적으로 마감한 수지 오페라단의 다음 오페라는 2014년 6월 6일부터 8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카르멘"이다. 2009년 창단해 해마다 두 작품씩 꾸준히 레파토리를 쌓아가며 행보 중인 수지 오페라단의 지혜로운 전략과 내실있는 운영을 기대한다.
mazlae@daum.net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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