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문화재단 카르멘 공연 프레스리허설의 한 장면 (사진=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공연예술비평가 강익모 프리뷰] 뮤지컬, 연극, 오페라가 같은 타이틀의 작품을 하려 할 때 관객은 어떤 작품을 택할까? 또 같은 오페라라 하더라도 상연도시와 주연, 연출, 스탭의 유명세가 다르다면 관객은 어떤 곳의 작품에 지갑을 열까?
이 뻔한 질문에 답이 보이는 듯 하지만 <카르멘>의 경우 반전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직 LG 아트센터에서 공연될 뮤지컬 <카르멘>이 남아 있으나 오늘의 실황으로 되돌아본다면 연출가의 힘이 느껴지는 고양시 아람누리 오페라<카르멘>의 치이점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오페라연출가 양정웅은 공연 전 '연출의 변'을 통하여 관객들이 극장을 나설 때 하바네라를 흥얼거리지 않게 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강한 비극적 사랑의 결말을 더욱 더 극적으로 드러내겠다는 각오였던 셈이다. '하바네라'에서 세기디어(플라멩고)를 추면서 노래(라틴어로 ‘카르멘’의 속뜻)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이미 가수이자 댄서이며 플라멩고와 알콜(와인으로 안달루시아 산 만자니아)중독을 일삼는 팜므파탈의 역할을 모두 가진 성악가여야 한다. 연출가가 찾은 이 비극적 드라마의 주인공은 과연 변신할 수 있는가? 카르멘의 전형적인 역할은 <맨 오브 라만차>의 여주인공, <노틀담 드 파리>의 집시들처럼 요염하고 누구나 연인으로 삼고 싶은 관능을 지닌 길들여지지 않는 저항과 자유를 표현하여야 한다는 전제를 중심으로 말이다.
2013년 11월 28일 고양 아람누리극장 첫 공연을 시작으로 이제 양정웅이 연출한 카르멘의 죽음을 불사한 사랑의 이유와 방식이 밝혀졌다. 오페라 꼬미끄 형식에 앞서 그랜드 오페라 형식의 카르멘이 꾸준히 공연호재로 사용되어져온 역사에 의문을 제기한 점에서 변형과 전복을 가능케하였다. 극적인 이미지를 높인 새로운 카르멘을 잉태하려고 작정하고 무대의상과 세트제작을 통한 차별화를 보여준 것이다. 즉 듣고 보는 단순한 기존의 카르멘과 다르게 디자인이 눈에 들고 뇌리에 남는 오페라를 만든 것이다.
서울이라는 대형시장이 갖지 못한 긴장을 의표로 찌른 승부수 다운 발상이었다. 플라멩고를 추지 못하는 성악가를 위한 배려로 전문 배우들을 쓴 세기디어의 등장은 플라멩고가 투우의 과정과 같다는 것을 간파한 연출가의 노련한 상징성의 사용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붉은천 카파와 붉은 색의 여인 카르민 캠핑카, 텐트, 세그웨이 등의 이동성은 두 연인에게 닥친 구속과 출구의 이중성을 담은 장치로 그것은 춤의 일종인 스텝으로 나아가거나 출구로 응용이 가능한 Salida로 이 공연의 주요키워드였다. 그것은 무대를 장식하는 암호처럼 액자화되어 시종일관 공연내내 무대전면 중앙부를 장식하였다. 카르멘이 탈출하지 못한 신분과 그녀의 야성, 저항과 자유스러운 분방이 비구속이라는 결어였음을 보여준 것이다.
고양문화재단 카르멘 공연 1막 무대 (사진=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외국 카르멘 주역들의 세기디어나 캐스터네츠 정도는 주역이 직접 연주해야하는 하바네라를 듣지 못한 아쉬움은 길게 남는다. 첫 공연 후 유추 할 수 있는 이 공연의 차별화 대목은 또 있다. 확달라진 무대의 색채이다. 기존 국립오페라단 <카르멘>을 비롯한 오페라들이 선보인 세트를 사용하며 비슷한 레퍼토리의 반복으로 긴장을 유도해내지 못하였다면 이 공연은 달라진 하드웨어의 형식을 따라 소프트웨어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형식적 구조가 부른 볼모를 대동하였다.
담배공장의 갈등과 싸움을 표현한 녹색 배경의 혼돈상징이나 붉은색 드레스를 걸친 여자가 아닌 녹색의 드레스를 입고 마치 뮤지컬 <위키드>처럼 나타난 카르멘은 신선하였다. 공연의 다양성 측면에서 그리고 지방오페라의 세련된 무대로의 시장진입이라는 측면에서는 퍽이나 다행한 행보로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중의 하나인 카르멘에서 언제 우리는 김연아가 '007','거미여인의 키스','레 미제라블'을 소화하듯 능수능란한 카르멘 한사람을 보유할 수 없을까? 아쉬운 대목을 확인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친숙한 선율과 관능적인 기질이 넘치는 오랜 음악이 펼치는 스페인적 색채에 더해진 프랑스작곡가의 감성, 남미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안달루시아집시의 개성이 뚜렷한 등장 인물들을 펼쳐낸 연출과 어린이들의 천진한 음성과 열연이 더해진 인간극에서 오직 하나 결여된 여성주인공의 부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 아람누리의 <카르멘>은 색다른 비극성의 신화를 그려냈다. 즉 사랑은 변덕스런 새(Habanera; L'amour est un oiseau rebelle)라는 속명의 '하바네라'는 영국의 컨트리 댄스와 스페인을 거쳐 쿠바로 건너간 흑인 감각이 추가된 춤곡에 카르멘과 호세의 죽음을 부른 총성이 오버랩되어 겹쳐져 숨겨져 있는 고민의 흔적 때문이다.
비제(Bizet, G.)가 메리메에게서 찾은 독특한 리듬을 가진 4-7연의 발라드와 볼레로들은 <카르멘> 의 절규와 카르미나들이 되어 그 누구도 길들이지 못한 법보다 강한 자유를 보여준다.
강익모/공연예술비평가 visualadd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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