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5일 광복절 오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격벽장에서<왜놈대장 보거라! 우리의 자유를>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사진=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퍼포먼스, 춤, 음악, 미술, 문학, 연극, 움직임 등 거의 전 쟝르에 걸친 여성 예술인 40명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격벽장에 모였다. 강릉, 춘천, 제주는 물론 일본과 독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까지.

천장이 뚫린, 사람 키높이보다 조금 높은 벽으로 이루어진 10개의 긴 격실이 모여 부채꼴 모양을 이룬 이 건물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온 수형자들을 위한 체력단련 공간이었다.

수형자들이 운동을 하는 시간에도 대화는 커녕 서로를 볼 수도 없도록 만든 이 체력 단련장은 전형적인 팬옵티콘 구조로, 수형자들은 운동을 하는 동안 오로지 수형자들을 감시하는 간수 밖에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제71회 광복절을 맞은 어제 오후, 40인의 여성 예술인들은 이 특이한 공간 각 격실마다 들어가 각자의 마음으로 염두에 둔 일제에 희생된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처절한 예술행위를 펼쳤다.

운동을 하면서도 오로지 지켜보는 간수와 1대1의 대면을 해야하는 갑갑한 격벽실, 속박과 구속의 공간이었던 서대문형무소 감옥.

억압과 고통과 죽음을 해방과 기쁨과 생명의 몸짓으로 승화시키는 여성예술가들은 다름아닌 감옥속에서 그 어떤 고문과 사형대 앞에서도 자유의 꿈을 꺾지 않았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환생인것이다.

▲ 10명의 수형자들이 왜놈대장에 이끌려 서대문형무소 격벽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왜놈대장에 이끌려 등·퇴장하는 각 10팀의 수형자들(여성예술가)은 격벽장안에서 20분간 퍼포먼스를 하고 다시 끌려나간다. 이렇게 3그룹이 등·퇴장하며 막간극을 포함, 33개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관객들은 자유롭게 관람하지만 일제하의 격벽장에서 그러했듯이 일체 말을 할수 없게 통제받았다.

격벽장 10개의 격실에 들어간 10명(팀)의 여성예술인들은 각각 독립적이며 개성적인 퍼포먼스를 벌였다. 첼로 연주자 문지윤은 첼로 위에 태극기를 감싸고 소리 나지 않는 첼로 퍼포먼스로 억압된 자유를 표현했다. 서양화가 배달래는 둥그런 철조망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오는 장면을 표현했다. 그냥 모양이 아니라 녹이 새빨갛게 슬은 진짜 철조망이었다. 공연기간이 미국 체류일정과 겹쳐 부득이 영상으로만 출연하게된 바이올린 강해진은 자신의 바이올린 연주 영상과 함께 아코디언과 함께 누워 쓰러진 퍼포머가 함께 했다.

첫번째 10명의 퍼포먼스는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 컨셉이었던 반면 두번째와 세번째로 가면서 격실에 들어간 예술인들의 퍼포먼스는 점점 더 자유도가 높아졌다. 예를 들어 연극배우 안현정은 격실벽 위로 자유롭게 타고 올라가기도 했다. 윤푸빗, 어효은, 백지혜 등은 마임과 소리없는 퍼포먼스를 펼쳤고 정공자와 최루시아 등 미술인들은 그림을 그려 벽에 내걸거나 길다란 한지에 붓글씨로 자유를 표현하기도 했다. 바이올린 박순영, 홍민아의 노래 퍼포먼스 등으로 격벽장의 분위기는 점점 더 상승되어 갔다.

▲ 40인의 여성예술인 광복절 퍼포먼스 <왜놈대장 보거라! 우리의 자유를> 출연진들의 격벽장 등·퇴장 시간을 이용한 막간극. 대금에 한충은, 가야금 하세라, 거문고 구교임, 소녀상 연기 어효은

▲ 격벽장 개별 격실 안에서 여성예술인 윤사비나씨가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결국 퍼포먼스의 끝은 일본을 상징하는 왜놈대장으로 부터의 자유! 일제하의 형무소 안에서 가끔씩 난동이나 폭동으로 자유의지를 폭발시켰듯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왜놈대장을 무력화시키고 모든 관객들과 퍼포머들이 함께 어울려 8.15 대한독립을 축하하는 자유의 난장, 통괘하고 신명나는 해방의 난장으로 이어졌다.

왜놈대장(부감독 김종학 분)은 3번째로 격벽장에 들어온 10명의 여성예술인들을 비롯, 이미 첫번째와 두번째로 퍼포먼스를 마친 여성예술인들과 그간 공연을 함께 관람했던 관객들에 의해 포위되고 무력화 된다. 왜놈대장에게 물과 밀가루를 뿌리고 소리를 지르며 결국 꿇어 앉힌다. 그리곤 모두 함께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요란한 꽹가리 소리와 함께 격벽장을 빠져 나간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격벽장에서 사형장과 시구문으로 이어진 자유와 해방의 난장. 예술인과 관객들이 신명이나서 '대한독립 만세!'를 함께 외쳤다. 난장의 마지막이 사형장과 시구문이 된 것은 이 곳에서 돌아가신 독립지사들의 해원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사진=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왜놈대장 보거라! 우리의 자유를>에 참여한 40인의 여성예술가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시구문 앞에서 태극기를 펼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격벽장 밖 광장에서 춤과 함께 아리랑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한껏 흥이 오른 관객들과 예술인들은 사형장으로 향했다. 평소 관람객들에게 절대 정숙을 요하던 사형장에선 "대한민국 만세!"의 함성과 태극기가 일렁였다. 난장의 마지막은 시구문이었다. 이곳은 일제시대 고문 등으로 심하게 훼손된 시체를 가족 몰래 형무소 밖으로 빼돌렸던 곳이다. 함께한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난장을 끝냈다. 원래는 시구문 안 터널까지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무너질 수 있다'는 관리자의 제지에 시구문 앞 마지막 만세 함성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8.15 광복절 퍼포먼스 <왜놈대장 보거라! 우리의 자유를>(예술감독 유진규)는 잘 알려져 있지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자 기획되었다. 그래서 나라잃고 독립운동하는데 남녀의 구분이 있을수 없다는 윤희순 의사의 여성의병대장 포고문인 '왜놈대장 보거라!'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

원래 3.1 독립선언에 참가한 민족대표 33인 숫자에 여성예술인 숫자를 맞추려했으나 취지에 동감해 자원한 여성 예술인이 이보다 많아 실제 참가자 수는 40명이 되었다.

▲ 모든 출연진과 스텝들은 죄수번호 낙인 모양의 특수분장을 하였다. 서대문구에 소재한 통미분장예술연구소가 분장을 맡았다. (사진=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 찌는듯한 더위 속 출연진 대기실이었던 9호 옥사는 더욱 찜통 같았지만 이런 곳에서 갇혀있었을 독립지사들을 떠올렸을까? 어느 누구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예술감독 유진규가 준비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춘천마임축제를 25년간 만들고 이끌어온 유진규 예술감독은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로부터 예술감독 의뢰를 받은 후 여성예술인들의 섭외를 비롯, 기획단계와 진행, 홍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SNS(페이스북과 카카오톡)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왜놈대장 보아라! 우리의 자유를> 공연의 주역, 40인의 여성예술가들

강해진 구교임 김미아 김성아 김이음 나비 모지애 문지윤 박순영 박영희 박주영
반은기 배달래 백정미 백지혜 서경선 선우미애 송미정 안현정 양혜경 어효은
오민정 위혜정 유유 윤사비나 윤푸빗 이영애 이미림 전인정 정공자 정신혜
정연숙 조선아 조은성 최루시아 최솔 최은진 하세라 홍민아 홍윤경


 <왜놈대장 보아라! 우리의 자유를> 공연에 출연한 남성예술가들, 스텝

남성예술가 : 김광석 김종학 박길수 배일동 유진규 한충은
스텝 :  권영일 김우정 김선미 남궁철 류성국 문성식
이구영 이끼 이은주 정동일 황현성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이밖에도 다양한 광복절 기념행사가 펼쳐졌다. 배우 오지혜 사회로 14일 열린 서대문독립민주축제 개막식에선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감동적인 퍼포먼스가 펼쳐졌고, 독립민주지사 풋프린팅에 이어 서대문 출신인 맨발의 디바 이은미의 열창이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형무소 옥사 체험 '자 이제 너희는 죄수다', 물총싸움 '독립을 향해 쏴라'를 비롯 다양한 체험행사가 펼쳐졌다. 햇볕이 쨍쨍한 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시를 둘러보기 위해 방문한 관람객들은 거의 1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 14일 저녁 열린 2016 서대문독립민주축제 개막식에는 배우 오지혜 사회로 서대문출신 가수 맨발의 디바 이은미가 출연해 열창을 했다.

▲ 14일 낮, 2016 서대문독립민주축제에서는 '독립을 향해 쏴라' 물총놀이를 비롯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어 가족단위 관람객들의 흥을 돋웠다.

서대문구 대표 지역축제인 서대문독립민주축제는 현 문석진구청장 선출 이후인 2010년부터 매년 가을에 열려 오다가 2014년부터 광복절 전후에 열리는 것으로 정례화되었다. 총감독 없이 공무원들이 만드는 행사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예술인 예술감독들이 함께했다.

관제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물총싸움, 페이스페인팅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기념행사 이벤트 뿐만 아니라<왜놈대장 보거라! 우리의 자유를>처럼 본격적인 예술인들의 참여로 만들어낸 색다른 볼거리가 있어서 좋았다. 다만 앞으로는 예술인들이 이번에 보여준 값진 성과에 걸맞게 좀 더 넉넉한 재원 투입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억하라! 우리가 있었음을..  지워져버린 여성독립운동가들의 기억

▲ 영화 <암살>에서 안윤옥 역을 맡은 전지현. 안윤옥의 실제 모델은 여성독립운동가 안자현이다. (사진=영화 <암살> 스틸컷,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음)

2015년 여름, 1300만에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내 역대 흥행기록 7위를 세운 영화 '암살'. 극 중 안옥윤 역을 맡은 전지현의 대사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는 당시 영화를 본 꽤 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남았다.

30년이 넘는 식민지 세월동안 상당수 조선 백성들은 일제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기도 했었지만 의병에서 독립군, 그리고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의연한 투쟁의 전사들은 결코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가 기억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 밖에 없었을까?

유관순 이외에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모두가 나혜석, 최승희, 박경원, 김활란처럼 일제에 순응하며 단지 자신만의 꿈을 위해 살아간 신여성, 모던걸에 불과했던 것일까?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백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이 있고,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역을 맡은 안옥윤의 실제 모델 안자현, 여성으로는 최초 공군 여비행사였던 권기옥,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투척한 안경신, 여성의병대장 윤희순을 비롯해 현재 국가보훈처에 집계된 독립유공자 숫자만도 270여명에 이른다. 물론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난 역사 국정교과서 집필을 둘러싼 논란에서는 단지 교과서에 '유관순이 있다, 없다'만이 크게 부각되었을까? 왜 여성들은 어릴적부터 교과서에서 남성 독립운동가들의 행적만 배우고 기억할 수 밖에 없었을까?

사실 우리 역사교과서에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는 그 흔적조차 알기 힘들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와서야 어느 정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다루기 시작했고, 내년에 발행되는 국정교과서에서는 다시 제외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보다도 더 대우받지(기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2016년 일제시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현실이다. 분명히 있어도 없고, 보이지 않는 마치 투명인간 같은 존재인 여성독립운동가!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의 대사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는 오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마치 역사에서 지워져버린듯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새롭게 발견해내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가장 어둡고 암울하던 시절에 그들이 몸바쳐 흘린 피와 땀은 남녀 성별을 떠나 똑같이 숭고하고 위대한 것이기에!

2015년 시작된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회장 김희선, 전 국회의원)는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발굴하고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 2016 서대문독립민주축제에서는 '여성독립운동마당' 섹션을 기획해 40인여성예술인 퍼포먼스 "왜놈대장 보거라! 우리의 자유를"(예술감독 유진규), 시민참여 액션페인팅 "여성독립운동가의 벽"(예술감독 이구영), 캐리커쳐 그리기 "나도독립운동가"(작가 김종도)를 마련해 대중들에게서 잊혀진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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