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지난 5월 10일 화요일부터 5월 29일 일요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초연된 신시컴퍼니의 연극 '푸르른 날에'는 벌써 31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채로 현재진행형인 80년 5월 18일 군부쿠데타 정권이 자행한 광주학살의 트라우마를 다시 일깨워주고 있었다.

이창동감독의 유명한 영화 <박하사탕>이 영문도 모른채 군 복무중 광주시민들을 학살하는데 가담했었던 한 계엄군 청년이 당시의 트라우마로 인한 후유증으로 결국 암울한 인생 끝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던데 반해 이번 연극 '푸르른 날에'는 5.18 학살 당시 살기 위해 비겁한 행동을 하였던 한 청년이 겪은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다.

80년 5월 전두환 군부 쿠데타 정권에 의해 자행되었던 그 잔인했던 사건은 현대사에 있어 두고 두고 역사의 어두운 그늘이 되어 지금까지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전두환은 전재산 29만원인 채로 종종 골프장이나 공연장을 다니며 온갖 호사를 누리며 노년을 즐기고 있다.

한 까칠한 후배 평론가는 연극 '푸르른 날에'가 그런 점에서 꽤 눈에 거슬린듯 했다. 마무리 장면의 어슬픈 화해 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그날 그렇게 당했던 기억, 그 상처가 수십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데, 딸의 결혼식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리셋팅되면서 이젠 앞날만 바라보자는 식의 결론을 대하니 화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하긴, 일반 관객과 달리 평론을 하는 입장에서는 정확한 서사분석을 통해 지적할 것은 지적해 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 어떤 매체의 기자는 하필이면 5.18 주범 전두환을 찬양했던 미당 서정주의 시로 가사를 입힌 송창식의 '푸르른 날에'란 곡을 5.18 관련 연극에 쓸 수가 있냐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하긴 분명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여전히 치유받지 못한 상처를 가진채 살아가고 있는 유족들의 입장에선 더더욱 그러할 수 있는 노릇이겠다.

그런 맥락에서 이 작품이 제3회 차범석 희곡상을 받은 점(작가 정경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차범석 희곡상이 어떤 상인가? 전두환 군사 쿠데타 정권의 태동기에 '용비어천가'식의 조명 기사를 써서 극도의 찬양을 하였던 조선일보가 차범석연극재단과 공동으로 수여하는 상이니 말이다.

이 극의 결말은 조선일보 입장에서 얼마나 좋은가? 수십년이 지나도록 학살 책임자로부터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였지만 여지껏 끔찍한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유족들은 더 이상 학살 책임자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못한채, 아니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한채, 산자는 산자, 죽은 자는 죽은 자이니 과거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앞날만 생각하자는 메시지는 더 없이 환영할 만한 것 아닌가? 더불어 그들이 자행하였던 친일의 기억도 함께 잊어준다면 더할나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서사를 풀어나가는 측면에서의 관점에 따라 극본 자체가 결말에 대한 이런 중대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나름 꽤 잘 만들어진 축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초반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이끌어낸 고선웅의 연출도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나무랄 바 없었다. '인생'이란 연극을 한다는 멀티맨이 수시로 소주나 짱돌을 갖다주는 장면들은 지나치게 극이 무거워지지 않게 만들었고 이따금씩 시인 김남주의 시를 읊으면서 그날의 상황들을 묘사하는 방법도 적절해 보였다.

남산예술센터의 무대공간을 잘 활용한 복층식 무대라든지, 하강해 내려오는 다리를 비롯, 적절한 조명사용으로 무대전환의 효과를 만들어 낸 점, 특히 송창식의 '푸르른 날에'란 곡과 곡명이 잘 기억나지 않는 팝송, 민중가요 등이 적절하게 잘 쓰여져 감정이입의 효과를 높인 점도 사줄만 했다.

비록 결론 부분의 서사적 논리적 맹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모든 관객이 다 그렇게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를 보는 관객들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사실 나 역시도 송창식의 '푸르른 날에'란 곡이 흘러나올때 너무나 절묘하게 극에서의 정서와 맞아떨어져 서사 부분의 모순에 대해 크게 생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연극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작품에 대해 꼭 그렇게 정치적인 측면까지 따져가면서 바라본다면 공연감상이 너무 재미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긴 평론가들만큼 같은 공연을 그토록 재미없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서사를 따지고, 배우들의 연기와 전체 앙상블, 무대셋트, 음악이나 음향까지 꼬치꼬치 따지면서 봐야하니 왠만해서 어디 재미를 느끼겠는가?

지난 27일 저녁 공연을 보러와서 우연히 김영삼 정권시절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했던 사람을 객석에서 보았다. 당시 김영삼의 문민정부는 군정종식을 내걸었다가 오히려 민자당,공화당과의 3당 야합을 통해 탄생한 정권이었다. 비록 정권초기에 5공청문회, 5.18청문회 등을 열기도 했었지만 그들과 한뿌리가 되어버린 신한국당 김영삼 대통령을 보좌했던 그의 눈에 이 연극이 어떻게 비쳤을지 보는 내내 궁금했었다. 어쩌면 그가 현재 논설위원으로 있는 그 신문에서 그의 공연감상기를 볼 수 있지는 않을까?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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