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 아르스 노바 I 중 올가 노이비르트의 ‘로쿠스...두블뤼르...솔루스’(2001). 격렬한 움직임과
메시앙의 새소리 음형, 피아노와 1/4음 낮게 조율된 전자 피아노가 특징이다. ⓒ 서울시향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는 공연과 전시, 음악회가 매우 많이 열린다. ‘음주가무’의 나라라고 했던가? 좋은 춤과 음악을 들으며 시 한 수, 술 한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예로부터 풍류를 즐길 줄 알았다. 심지어 요즈음은 TV에서 노래 경연, 춤 경연 프로그램도 많고 어딜 가나 음악과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는 참으로 많다.
봄이면 특히 공연 전시가 많지만, 자연스럽게 열리고 감상할 수 있는 미술 전시회에 비해 현대음악 공연은 일반에게는 듣기에 낯설고 또 횟수적으로도 적게 열린다. 각 음악협회와 학회에서 열리는 그들만의 현대음악회 말고, 일반인들이 알고 가고 싶어하는 현대음악회는 많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006년부터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의 기획으로 매년 두세 차례 열리는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는 일반에게 생소한 현대음악을 알리고 팬층까지 확보하는 등 큰 역할을 해왔다.
지난 4월 16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I'은 ‘Wien(비엔나)’ 주제로 20세기 초 제2비엔나 악파로 불리던 쇤베르그, 알반 베르그부터 현재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게오르그 하스, 여류 작곡가 올가 노이비르트, 그리고 독일과 비엔나에서 수학한 한국작곡가 배동진의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첫 번째 작품으로는 알반 베르그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정 모음곡‘(1925) 중 세곡을 연주하였다. 음렬주의 작곡의 형식주의가 유행하던 20세기 초 분위기에서 베르크는 음렬을 사용하면서도 감정적인 색채를 풍부히 표현하는 작곡가로 유명했다. 베르그는 이 작품을 작곡하여 젬린스키(Alexander von Zemlinsky, 1871~1942)에게 헌정했는데, 사실은 이 작품이 젬린스키의 '서정적 교향곡(Lyric Symphony,1923)'을 인용해서 쓴 것이라는 것이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날 공연에서는 베르그가 초연의 성공 이후 2,3,4,악장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한 버전을 연주했다.
베르그의 작품을 들으면 바그너의 풍부한 감정적 표현, 말러의 세기말 적 느낌과 동시에 쇤베르그의 구조성을 느낄 수 있다. 2악장 Andante amoroso의 서정적인 선율선, Allegro misterioso의 sul ponticello로 시작하여 분주한 웅얼거리는 느낌이다가 점차 격렬해지는 하행음계의 반복. 4악장 Adagio apassionato에서는 비단이 얽히듯이 부드럽고 매혹적인 선율들에서 모두 음렬이 쓰였다는 것보다는 풍부한 감정의 표현이 우선적으로 들린다. 베르그는 자신의 일상을 작품의 음계에 암시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서정 모음곡’도 마찬가지로 3악장의 경우 Alban Berg의 앞 글자를 딴 ‘AB’와 그와 염문에 휩싸였던 한나 푹스-로베틴(Hanna Fuchs-Robettin)의 ‘HF’를 이은 ‘A-B-H-F’라는 네 음 주제가 라이트 모티프처럼 계속적으로 반복되어 통일감을 주면서도 감정적인 색채를 잃지 않는 스타일로 작품을 구성했다.
두 번째 작품은 아놀드 쇤베르그/한스 아브라함센 편곡의 ‘여섯 곡의 작은 피아노 단편, op.19’(1911, 편곡 1992) 중 네 곡을 연주했다. 아브라함센의 챔버 앙상블 버전 편곡은 원곡의 투명함과 간결함을 드러내면서도 각 악기별 특성을 살리며 더욱 색채적으로 편곡되어 있었으며, 이날 연주는 1, 2, 3, 6곡을 연주했다. 네 곡의 연주시간이 6분을 안 넘을 정도로 정말 짧은 작품이다.
▲ 하스의 ‘자유로운 존재들의 합일’(1996). 10개악기의 개별 진행이 전체를 이룬다. ⓒ 서울시향
1곡은 여러 음역을 옮겨 다니는 주제선율이 엷은 음층으로 트레몰로, 플라터텅잉 등의 특수주법으로 표현되었다. 2곡은 목관악기의 미니멀한 스타카토 반주 위에 선율이 대담하게 노래하고 있었고, 3곡은 찬미가처럼 장중한 도입에 관악기와 현악기의 번갈아 오가는 선율이 특징이었다. 여섯 개의 단편 중 앞 다섯곡이 1911년 1월의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작곡된데 비해, 6곡(Sehr Sangsam, 매우 느리게)은 그해 6월 말러의 죽음에 바치는 장송곡으로 작곡되었는데, 느린 음표의 화음이 악기별로 미묘한 색채로 표현되며 차분하고 관조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세 번째 작품은 배동진의 ‘아타카 수비토 Attacca subito'(2013)로 서울시향 위촉 작품이었다. 배동진은 독일과 특히 오스트리아 그라츠 음대에서 베아트 푸러를 사사했으며 2011년에는 오스트리아 교육문화예술부 초청상주예술가로 활동했다. 아타카 수비토는 음악에서 한 부분에서 다음 부분으로 중단 없이 바로 연결하라는 지시어다. 이 지시어는 각 악장이 구분된 전통음악과 달리 현대음악에서는 각 악장이나 부분이 단절되지 않고 서로 지속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배동진의 작품은 처음에 술 타스토, 트레몰로 등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엷은 층의 음 색채와 음 재료로 시작해 점차로 음폭이나 움직임이 중단되지 않고 커지는 구조로 진행되었다. 크레센도 되는 지속음에 빠른 잔리듬 상행음계 등이 서로 얽혀 복잡한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조용해지고, 또 이내 복잡해지기를 반복하면서 각 부분은 전체 구조의 모습을 이루어나갔다. 세련되고 오랜 시간 공들여 쓴 작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유럽식의 모든 작곡스타일이 조금씩 이 한 작품안에서 보여지는 것에 비해, 본인만의 어법이랄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이나 개성은 오히려 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인터미션 후 첫 번째 작품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하스의 10명의 연주자를 위한 ‘자유로운 존재들의 합일 ...Einklang freier Wesen... for 10 musicians’(1996)였다. 하스는 기존 평균율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미분음, 새로운 조율법 등을 탐구하여 작품에 쓰기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은 조율법보다도 열 명의 연주자가 독립된 선율과 운동성을 가지며 처음부터 끝까지 운동해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 각각의 움직임 때문에 전체의 윤곽이 흐려진다거나 난잡해지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각 악기별 진행의 개성이 살아있으면서도 그것들이 모여서 나름의 전체를 이루는 모습이 보이는 특이한 작품이었다. 따라서, 각 악기의 진행으로 불협화음과 협화음이 미묘히 결합된 화성적 색채감과 쉴 새 없이 격렬히 움직이는 역동성이 전체구조를 이루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은 오스트리아의 여류작곡가 올가 노이비르트의 독주 피아노와 앙상블을 위한 ‘로쿠스...두블뤼르...솔루스 Locus...Doublure...solus’(2001)였다. 이 작품은 그녀가 프랑스 작가 레이몽 루셀(1877-1933)의 두 개의 소설 ‘Doublure'와 ’Locus solus'에서 제목을 가져다 자신의 곡 제목으로 편집한 것으로, 번역하면 ‘오직 장소만이’ 혹은 ‘이 장소에서만’ 정도의 뜻이다. 소설에서처럼 작곡가는 곡을 일곱 개의 악장으로 나누고, 작가 루셀의 방법대로 읽는 순서, 즉 곡에서 듣는 순서는 자유롭게 구성하도록 했다.
제목에서 'Doublure'가 곡에서 의미하는 바는 ‘이중’ 즉 전자 피아노와 첼레스타가 피아노보다 1/4음 낮거나 높게 조율되어 피아노 선율을 쫓아가며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피아노는 무대의 왼편에, 전자 피아노와 첼레스타는 오른편에 배치되어 그 미묘한 음차이가 이루어지는 공간 사이에 여러 악기들이 어우러져 함께 소리를 만들어간다.
▲ 알반 베르그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정 모음곡‘(1925). 세종 체임버홀의
구조상 무대가 좁게 느껴지고 음향도 연주에 비해 복잡하게 들려 아쉬웠다. ⓒ 서울시향
전체적으로 앞 순서의 게오르그 하스 작품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여성 작곡가의 작품이 이렇게 격렬할 수 있나 무척 인상적이었다. 모든 악기가 격렬하고 빠른 템포의 잔 리듬으로 넓은 음역대에서 하나같이 시원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1악장은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 같은 음향과 피아노의 빠른 움직임의 협주, 사이렌 소리 같은 음형의 반복 등 시끄럽고 빠른 음향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2악장은 1악장보다는 다소 엷은 음층이지만 여전히 다이내믹하고 아치형의 빠른 하행과 상행 아르페지오가 재밌다. 3악장은 피아노 현에 물체를 끼우고 희뿌연 음색으로 진행한다.
4악장은 호른, 트럼펫 등의 금관악기의 부점 리듬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다이내믹이 무척 크지만 시끄럽지 않고 오히려 행진곡처럼 절도가 있다. 6악장은 느린 4분음표의 유니즌으로 장렬하게 시작하고, 피아노 솔로는 메시앙의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의 새소리 음형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7악장은 상행음계의 짧은 곡이었는데 트레몰로로 격렬한 종결을 한다.
‘비엔나’란 주제로 20세기 초 제2비엔나 악파부터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작곡가까지의 다섯작품으로 20세기를 지나오며 어떻게 작품들이 변해왔고 또한 크게는 일관적인 부분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연주회였다. 다만 세종체임버홀은 무대나 객석의 규모가 작고 무대단이 높은 구조라서 20명 이상의 앙상블 연주에서는 시각적으로는 무대가 너무 꽉 차고 청각적으로는 소리가 메마르고 직접적으로 들려서 실제 연주의 질에 비해 안 좋게 들리는 단점이 있었다.
진은숙의 ‘2013 아르스 노바’는 하반기에도 두 번의 연주회가 진행된다. 아르스 노바 III는 10월 9일 세종 체임버홀에서, 아르스 노바 IV는 10월 1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된다. 매년 상반기에 두 번, 하반기에 두 번으로 1년에 네 차례의 연주회로 지난 몇 년간 현대음악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크게 바뀌어 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또한 진은숙은 마스터클래스로 한국의 작곡학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세계 콩쿨에 입상시키는 등 후학활동에도 신경써 성과를 올렸다.
다만, 지난 4월의 아르스 노바 I, II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우리나라 작곡계에 대한 지탄이나 본인의 후학활동에 대한 언급이 자신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아전인수격으로만 보이게 된 것에 대해서는 다소 유감이다. 진은숙이라는 작곡가의 작품성과 요사이 아르스 노바를 비롯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음악계에 새바람을 몰고 온 공로를 우리가 크게 인정하는 만큼 작곡계가 받은 충격은 꽤나 커 보인다. 그 여파가 크다기보다는 본인이 한국에서 음악과정을 밟고 세계로 나아가 세계적인 작곡가로 성장했음에도 창작자가 한 세기에 공존할 수 없다, 한국의 학제식 작곡교육이 문제 있다는 내용의 언급은 이 땅의 대학교육에 대해 무시하는 언사다.
그녀의 이러한 생각은 이날 기자간담회 뿐 아니라 그간 이곳저곳에서 본인이 얘기하던 바라서 한순간의 실수로 잘못 언급한 것으로 보기엔 힘들고, 오히려 더욱 공론화를 위하여 꺼낸 목적으로 보인다. 폭풍까진 아니더라도 한국작곡가협회는 공식입장을 내놓았고, 페이스북 등의 SNS 공간은 며칠간 시끄러웠다. 의도대로 공론화된 면에서는 대단하지만, 소위 말하는 우리식의 ‘예의범절’로서는, 충실히 작곡과에서 열심히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사람에게나 작곡과 출신으로 충분히 배우고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적지 않은 불편함을 안긴 것이 사실이다.
한 가지 제언은 한국의 음악계와 작곡계에 대한 진정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자 한다면, 기자회견장에서의 일방적인 ‘주고 받기’ 식이 아니라 포럼이나 토론회 등 공론화된 장에서 현장의 교육자들과 함께 진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왕 이렇게 시작된 일이니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음악, 품위 있는 창작의 길을 모색하는 합일점을 시간을 두고 긍정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옳은 방법이겠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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