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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서울 284 두번째 기획전시, '대중의 새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

전시

by 이화미디어 2013. 6. 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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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역서울 284 2013년 두번째 기획 프로그램 '대중의 새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전에
초대된 낸시랭이 지난 3월 13일, 자신의 개인전 '강남친구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플레이뉴스 문성식기자] 문화역서울 284(구 서울역사)가 6일(목)부터 2013년 7월 14일(일)까지 2013년 두 번째 기획프로그램 '대중의 새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전(기획 김노암)을 연다.
'대중의 새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전은 문화역서울 284의 '새발견 시리즈' 두 번째 프로그램으로서, 첫 번째 기획 프로그램인 '서브컬처 익스프레스 2013 - 여가의 새발견'에 이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계층과 지역문화가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대중의 시대'에 살고 있다. 민족, 국민, 대중, 시민 등 현대를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다양한 용어와 개념이 있지만 그 중 특히 '대중'이라는 개념은 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근대 산업사회 이후 등장한 '대중'이 정치, 경제적 의미에서의 대중이었다면, 현대의 '대중'은 문화예술의 주체적, 객체적 특성과 연결 되어 경제적 관점에서 부각되고 있다. 문화역서울 284의 '새발견 시리즈'는 이러한 시대적 특성을 문화 예술적 관점에서 끄집어내고, 이러한 현상 변화에 대한 꾸준한 관심에서 기획되어진 것이다.

첫번째 프로그램인 '서브컬처 익스프레스 2013 - 여가의 새발견'은 대중이 자발적 주인공인 대중주의 미학의 시대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여 대중 문화행위의 근원적 목적이랄 수 있는 '여가'에 촛점을 맞추었다고 하면, 이번 '대중의 새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전은 예술가의 예술행위의 근원적 목적이자 그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에 집중하는 기획이다. 이번 전시는 예술가들의 시각에서 조명하는 대중, 대중문화, 대중미학을 중심으로, 오늘날 현대미술과 대중문화가 어떻게 융합하고 새로운 형식과 표현을 획득해 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즉, 일상에서 성장한 취미와 문화적 표현이 전문 예술가를 통해 발현할 때 어떤 형식으로 드러날 수 있는 가를 전달하고, 이를 통해 예술보다는 문화를 중심으로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는 문화역서울 284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의 일환이다.

이번 전시에 초대한 작가들은 강영민, 권기수, 권오상, 김준, Mod(10명), 김지훈, 김창겸, 김태진, 라선영, 왕치, 이현진, 윤현선, 이기일, 이동환, 이준형, 전미래, 전수현, 천성길, 최경우, 최현주, 후디니, 반달, 코마 등 총 25인(팀)으로 현대미술, 오브제, 설치, 인형극, 연극 등 복합장르 등의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이들은 난해함과 이론적, 미학적 접근을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현대미술' 특성보다는, 대중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그리고 현대미술을 도구로 우리의 문화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에 집중한 작업을 보여준다. 또한 이를 통해 부정적 의미로서의 '대중성'에 매몰되지 않은,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새로운 의미의 '대중성'을 사유할 수 있는 개인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를 모색한다. 즉, 자신의 삶과 문화를 스스로 가꾸고 창조해가는 긍정적 의미의 '대중' 과 '대중문화'를 예술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전시와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도 개최된다. 6월 20일(목) 저녁 7시에는 '대중의 힘, 대중예찬'이란 주제로 철학자 강신주가, 6월 27일(목) 저녁 7시에는 '대중미술, 대중들이 만들어가는 예수. 그리고 문화' 주제로 전시기획자 겸 미술평론가 류병학이, 7월 6일(토) 오후 4시에는 '먼나라 이웃나라 대중미술' 주제로 미술평론가 엄광현이 각각 '디자인평론가 최범과 함께 떠나는 문화탐방'이란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맡는다.  이번 교육 프로그램은 문화역서울 284의 2013년 전체 교육 프로그램인 '디자인평론가 최범과 함께하는 문화탐방'시리즈의 첫 번째 섹션(대중예찬)으로, 일반 강연의 형식을 벗어난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되어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중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역서울 284는 (구)서울역을 복원하여 2011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개관하여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역동적이고 개방된 공간으로서, 다양한 생활문화의 생산거점이자 철로가 가진 네트워크로 연계되는 문화역을 추구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가 융합되고, 대안적이고 실험적인 전시, 공연, 컨퍼런스, 연구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향유, 감상, 참여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 문화역서울 284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이곳에서의 각종 전시와 행사들을 주관하고 있다. 이번 '대중의 새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전 역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을 맡고 있다. 개막식은 6월 5일(수) 오후 5시이며  오프닝 전 사전행사는 4시에 시작된다. (문의=문화역서울 284, 02-3407-3500)



문화역서울 284 2013 두번째 프로그램 '대중의 새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 기획전 서문

                                                                                        김노암(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

오늘날 대중과 대중문화는 치열한 문화의 전장(戰場)이다. 세상은 대중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으려 경주한다. 마찬가지로, 예술도 대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 상상의 대중

홀로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과 가족과 함께 저녁 드라마를 보는 것은 다르다. 홍대앞 놀이터에서 토요일 오후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과 홍대앞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는 늦은 밤의 청춘남녀는 다르다. 서울시청 앞 광장의 축제인파와 덕수궁 대한문의 시위인파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울역 앞 광장에서 노숙인들과 신흥종교인들 사이로 보수우익의 집회와 진보그룹의 집회는 또한 많이 다르다. 이외에도 대중의 관념을 구성하는 이미지는 무수히 많다. 전쟁터의 피난민,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위군중, 출퇴근하는 또는 분배의 정의를 주장하는 노동자들, 축구장과 야구장을 메운 군중들. 입시철 고등학교와 대학가를 메운 학생과 가족. TV와 신문과 잡지를 메워나가는 대중의 이미지들.

인터넷과 다문화 다중의 시대에 대중은 민족과 국가, 역사와 문화 속에 분화된 계층과 직업과 성(性)과 세대와 시기마다 다양한 얼굴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대중은 너무도 폭넓게 사용되어 ‘대중’이란 말로는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기가 어려워졌다. ‘대중’이란 말은 ‘시민’, ‘공중’, ‘다중’이란 말로 분화되어왔다. 그런데 시민이니 공중이니 다중이니 하는 용어들도 지구촌시대를 사는 초고속정보화 덕분에 ‘대중’ 그 이상으로 너무도 빨리 소모되어버리고 있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대중을 상상한다는 것은 시민을, 공중을 다중을 함께 상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들이 만나는 대중(문화)은 그리 만만한 주제는 아니다. 무한히 변주하며 확산하는 인터넷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현대미술의 오랜 과제인 소통, 예술과 대중의 만남은 어떤 심오한 논리나 개념, 정신보다는 일상의 감각과 반복된 경험에 의존하며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서로를 상상해 왔다. 이미지를 상상한다는 것은 인식의 문제이자 동시에 존재의 문제와 연결된다.

대중은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집합적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도식화하며 형성된다. 그러나 대중은 개인이 모인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갖는다. 대중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대중은 한없이 세속의 중력이 작용하며 정신의 단계에서 육체의 단계로 추락하는 집단이며 욕구에 충실한 비루하고 초라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런 대중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은 대중문화로 압축된다. 그러므로 대중문화와 예술은 불편한 긴장과 갈등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더욱이 갈수록 정교한 이론과 논리로 구축되는 현대예술은 감성적 공감에 익숙한 대중과 필연적으로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현대예술의 계보학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대중은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대중의 예술에 대한 욕망은 멈춘 적이 없다. 세속적 충족을 향해 전진하는 대중과 그들의 문화는 역설적으로 너무도 투명한 욕망의 운동으로 순결하기까지 한 것이다.

2. 대중, 근대의 얼굴

역사는 한편으로는 드라마틱하게 전진하고 다른 한편으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천천히 운동한다. 그 과정에 미술가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당대의 사람들과 그들의 사회와 사건을 상상하고 기록하고 표현해왔다. 대중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기록한 미술가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미술가들이 대중의 모습을 최초로 상상하고 이미지를 부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중이란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와 중세의 미술가들은 대중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신과 영웅과 왕들의 명령과 주문을 받아 이미지를 생산했을 뿐이다. 르네상스의 여명기, 지중해와 북유럽에 대중이라 불리만한 계급이 등장하면서 미술가들은 무역과 상업으로 자산을 모은 시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근대의 민족국가가 성립된 시기를 전후해 비로소 대중의 삶이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인민과 민중, 국민과 민족. 숭고하고 성스런 세계에서 대지로 하강하여 그림을 주문할 수 있는 정도의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재현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초기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근대 장르소설(연애, 추리 등)은 잘 알려진 것처럼 산업혁명 이후의 기차여행의 대중화로 폭넓은 시장이 만들어진 덕분이다. 며칠씩 걸리는 기차여행은 저가의 대중적 문학시장을 활짝 열어놓게 되었는데, 독자는 통속적으로 잘 계획되고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이야기를 경험하며 근대인의 전형을 학습하였다. 전근대인은 반복된 대중문화의 경험을 통해 작가와 만나고 근대적 사유와 정서와 교감하면서 근대의 개인으로 성장한다. 의식과 정서의 관습과 제도가 내면으로부터 변화하게 되었다.

반면 개인의 세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예술가들 또한 대중의 일원으로 대중문화에 깊이 빠져들면서도 동시에 어떤 위기와 긴장을 축적하였다. 에펠탑, 자동차, 비행기, 유람선, 사진, 영화, 패션 그리고 수많은 ‘현대성’의 경험들. 매스미디어로 형성된 대중의 담론을 통해 집합명사로서 대중의 반대편에 있는 독립적인 개인이 드러난다. 대중이자 대중이기를 거부하는 운동 속에서 집단적 대중과 근대 개인이라는 이중의 근대가 탄생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는 인간이 생각보다 고상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이며 미덕보다는 해악을 주는 존재로까지 추락하였다. 비극적이지만 신과 교감하였던 고상한 인간은 비참하면서도 저속한 존재로 여겨졌다. 국가사회주의와 자본주의아래에서 관리되는 대중은 그런 인간의 집단을 표상하는 부정적 표현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인간의 가치가 등락하는 시대를 거치며 미술가들은 이상적인 인간을 상상하던 시대, 산업혁명이후 자본주의의 시대,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시대의 대중을 상상하고 재현하는데 성공하기도 또 실패하기도 했다. 대중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 사람과 생활의 변화 가운데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인식되었으나 결코 하루아침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대중은 계급에서 자본으로 상품에서 예술로 자기규정을 번안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해왔다. 대중은 결코 자의식을 가진 개인이나 주체는 아니다. 대중은 언제나 개인이 상상한 주체이다. 덧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대중’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수많은 경로로 확산하며 중층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에 ‘대중’이 자리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주체’가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3. 통속의 선용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익숙한 현대적 의미의 대중이 출현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 시대와 같은 전통적으로 농업을 장려하고 상업과 무역이 위축된 시기에 대중은 출현하기 어려웠다. 대중은 세계가 확장하는 운동 중에 등장하는 계급 또는 주체이다. 불행하게도 20세기 초 우리에게 그 확장의 주체는 일본 제국주의였고, 우리는 그런 일제강점기의 외부에서 억압적으로 강제된 사회의 변화와 확장과 함께 근대적 의미의 대중의 출현을 맞이했다. 이 시기 매스미디어(신문과 잡지, 라디오)가 등장했고 신파의 정서를 담은 문학과 공연, 영화, 대중음악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정착되었다.

20세기 중후반까지 우리 사회는 일제강점과 해방직후의 혼란기, 한국전쟁과 연이은 전체주의 독재정권의 시련기 속에 휩쓸려 다녔다. 대중은 그 속에서 출현했고 성장하였고 한편으로는 왜곡되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성장한 대중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최근까지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자학적이며 억압적인 형태로 성장한 대중, 대중문화는 본격적인 예술의 주제로 다뤄지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한국 대중문화가 정착된 90년대를 지나 세계로 뻗어나가자는 변형된 계몽의 정신(한류)의 범람 속에서 싸이가 백남준의 후예라거나 낸시랭이 우리 정치문화의 쟌다르크라는 말들이 튀어나오고 또는 대중음악과 아이돌이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현실에서 예술가들 역시 대중(문화)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중은 하나의 완결된 관념이기 보다 다양한 방향으로 ‘개인’을 구성하는 내러티브이다. 단일한 대중은 없으며 무한히 분열하는 여러 대중이 있는 것이다. 대중이란 민족, 국민, 민중, 군중, 인민, 시민, 다중 등 다양한 관념과 해석과 연동하며 우리의 상상을 자극한다. 대중에 관한 우리의 인식은 다양한 관점이 가능하다. 무수한 대중의 얼굴이 가능해진다. 더욱이 이미지를 다루는 시각예술가들의 해석과 표현을 통해 번안되는 ‘대중’이란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된다. 그러므로 단일한 대중을 표상하려는 것은 전체주의의 한 징후이고 예술가들이 다양한 대중을 표상하는 것은 전체주의 문화에 저항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활동을 통해 사회학적 또는 정치적 관념의 대중에서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미학적 문제로 변경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하찮은 것으로 평가절하 되고 있다. 문화는 ‘고급’과 ‘교양’의 이름으로 규정되고, 대중문화는 이런 기준에 미달하는 마치 주홍글씨처럼 꼬리표가 달리고 만다. 그리하여 대중이 즐기는 모든 것들은 언제나 불평과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천박하고 속물적인’ 사람들은 이런 이중의 인식과 태도로 ‘대중’과 동상이몽한다.

<대중의 새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전은 지난 <여가의 새발견>의 연장선에 있다. 무언가 새롭게 발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또 그렇게 발견한 것들에 계속 집중하면서 생각하고 있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역시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며,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대중의 문제를 직접적이든 또는 간접적이든 작업과 연결하며 질문하고 있다. 대중의 문제를 부정적으로 또는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작가들의 자유로운 판단이다. 그 결과 그 의미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에서 대중(문화)의 문제를 간과하거나 소홀히 다룬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자. 한강변 압구정 나들목은 우리나라 1세대 그래피티의 산실이었다. 처음 이곳에 그래피티가 등장했을 때 해당 구청의 공무원들은 그래피티에 대해 불법적인 활동이란 판단으로 매우 신속하게 대응했다. 너무도 성실한 공무원들의 활동으로 그래피티아티스트의 그리는 속도보다 구청 직원들의 지우는 속도가 더 빨랐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래피티가 예술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당대 대중의 마음과 현실을 재현하는 이미지였음에는 분명하다. 지금도 주위 어디에선가 미처 인식되지 못한 상태로 새로운 창작 활동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현대예술은 현실과 대중(문화)의 변화를 복잡하게 가로지르는 경로를 통해 현재와 연결된다. (출처=김노암 블로그_바나나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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