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작곡가 Kevin Parks의 “Remorseful Chapter”. 한국전통음악과 시를 공부해 온 작곡가가
자신의 주특기인 노이즈와 맥놀이의 전자음향으로 자신을 잘 표현했다. ⓒ 한국전자음악협회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10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5일 동안 열리고 있는 20주년 기념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 2013(Seoul International Computer Music Festival 2013, SICMF 2013)의 넷째날은 한국작곡가들의 작품으로 한국전통악기와 전자음향의 만남에 의한 콘서트였다. 연주단체 CMEK 멤버들이 연주하는 대금, 생황, 가야금, 장구, 첼로가 각 작곡가 작품별로 배치되어 서로 다른 스타일의 전자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총 일곱 작품 중에 소재를 시에서 가져온 작품이 초반부 세 작품이었다. 강중훈의 “오감도 시 제6호(The Crow’s-Eye View: Poem No. 6)”는 이상의 시 오감도 제 6호에서 소재를 가져오고 생황(연주 이향희)과 전자음향이 함께했다. 약간 코맹맹이 같은 생황의 얇고 여러음이 중첩되는 신비한 음향을 전자음향이 잘 필터링하고 변형시켜 배경음을 제공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생황주자가 시의 발췌부분을 직접 낭송하는데, 이것이 딜레이, 피치쉬프트 등에 의해 변형되고 중첩되면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의 난해한 형태와 기괴한 내용, 거기서 느껴지는 불안과 공포가 음악으로 잘 표현되었다.

두 번째 김미정의 “April”은 대금과 전자음향을 위한 작품으로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701~762)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봄을 주제로 했다. 이었다. 1악장 '봄이오는 소리'는 대금(연주 김승겸)이 ppp의 아주 작은 음량과 플라터 텅잉, 운지하는 손가락 소리, 바람소리 등으로 봄에 대한 기대감과 생명이 움트는 소리를 표현한 것이 특히 재미있었다.

2악장 '봄의 절정'과 3악장 '자연의 아름다움과 임을 향한 기다림'에서는 대금이 좀 더 큰 음량과 무궁동 같은 구체적 선율선으로 변한다. 이것이 전자음향으로 딜레이, 리버브, 소리의 공간이동으로 처리되는데, 마치 바람이 부는 넓은 갈대밭의 이쪽저쪽에서 메아리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따라서, 다른 작품처럼 복잡한 컴퓨터 처리보다 오히려 간결하고 깨끗하게 작품의도를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어 좋았다.

세 번째 미국 작곡가 Kevin Parks의 “Remorseful Chapter”는 테잎과 가야금을 위한 작품으로 이상의 시 '회한의 장'을 소재로 했다. 팝콘이 '틱틱'거리는 듯한 노이즈, 저음에서는 웅웅거리고 고음에서는 유리알이 어른거리는 것 같은 맥놀이 소리를 배경으로, 가야금(연주 백승희)이 농현과 함께 무척 집중적으로 점묘적인 몇 음을 낼 뿐이다. 여기에 중간부에는 시 전체를 어떠한 전자음향 처리 없이 깨끗하게 영어로 나래이션해서 음악과 대비된다. 미국출신 작곡가인 그가 지난 수년간 한국전통음악과 시를 공부해 온 과정을 자신의 주특기인 노이즈와 맥놀이의 전자음향으로 자신을 표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김태희의 “가락노리(Garak-nori)”. 한국전통음악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고, 전자음향은
딜레이와 리버브만으로도 악기에 더욱 색채감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 한국전자음악협회


전반부의 마지막은 김태희의 “가락노리(Garak-nori)”였다. 앞 음악들이 악기하나와 전자음향이었고 현대음악 주법들로 구성된 데 반해, 이 작품은 대금(김정승)과 가야금(이지영), 장구(김웅식)의 세 악기와 전자음향을 위한 작품으로 그 음악도 한국전통음악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고 있었다. 대금이 선율을 이끌어가고 장구는 고동박을 울려주며 가야금은 그 중간을 물결로 수놓는다. 전자음향은 딜레이와 리버브만으로도 악기에 더욱 색채감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후반부의 첫 번째는 임승혁의 “verkürzt II”로 생황과 첼로, 라이브 오디오-비주얼 작품이었다. 무대 왼편에 생황(이향희)과 첼로주자(박정민)가 앉아 연주하고 이 모습이 실시간으로 무대뒤편 스크린에 보여지는데, 각 주자가 연주하여 음악이 딜레이 될 때 동시에 화면도 각 주자의 모습이 딜레이 되어 연주자가 움직이는 잔상이 화면상에 보여지게 되는 형태였다. 영상과 소리에서 모두 '딜레이'(delay: 소리나 영상이 녹음, 녹화되고 다시 재생되는 과정)가 13초 단위에서 시작해 0.1초까지 짧아진다는 아이디어로 작곡된 것인데, 이날 공연에서 유일한 오디오-비주얼 작품인데다 단순한 아이디어로 집요하게 곡을 끌어가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다음은 신성아의 “resonance”로 대금과 테잎을 위한 음악이었다. 전반부 김미정의 작품이 대금(윤지희)의 현대주법으로 이루어진 데 비해 이번 작품은 전통적인 주법 위주여서 대조를 이루었다. 첫 시작음이 대금특유의 강한 바람 섞인 꺾는 음의 크레센도로 시작하여 리버브 되고 있었고, 테잎은 여기에 청명한 공기소리 같은 공간음과 글리산도가 섞인 맑은 금속성의 음향 등으로 엷은 층의 배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중간부는 점차로 격렬해졌는데, 대금의 전통적인 느낌의 연주와 이것을 살리기 위해 깨끗한 배경역할을 하며 엷고 미묘한 움직임으로 배치된 테잎이 특징이었다.

 

▲ 임영미의 “해와 초승달(The sun and the crescent moon)”. 가야금의 각종 현대주법과
딜레이, 소리의 공간이동 등의 전자음향으로 음양의 원리를 표현하였다. ⓒ 한국전자음악협회



이날의 마지막 작품은 임영미의 “해와 초승달(The sun and the crescent moon)”로 가야금과 전자음향을 위한 작품이었다. 가야금 뒤판의 울림구멍 모양이 음과 양을 상징하는데서 착상해 하늘과 땅, 해와 초승달로 이 음양의 관계를 표현했다.

첫 부분에는 가야금(연주 이지영)의 뜯기, 느린 선율의 농현 등 일반적 주법으로 시작해 무궁동 같이 계속되는 알베르티 베이스 같은 음형과 아르페지오로 절정을 이루고, 하모닉스, 활로 현을 긋기,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현을 문지르기 등의 현대 주법으로 발전부를 이루는 구성이었다. 이것이 전자음향으로 리버브, 딜레이 되었는데, 특히 가야금 12현의 아르페지오와 함께한 딜레이와 소리의 공간이동 효과는 가야금 12현의 특징을 살리면서 엄청난 증폭과 함께 일종의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지난시간 많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국악기와 한국전통음악에 대한 관심과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할 일은 많다. 이날처럼 전자음향과 함께하는 음악회, 국악기 핸드폰 벨소리, 국악기 결혼식음악의 보급화, 국악미사 연중한달 의무화 등 우리전통음악이 우리생활과 자연스레 함께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 어렵더라도 어려워하지 말고,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다가갈 때 한국전통음악이든 전자음악이든 어렵다는 이유로 장르의 경계에 갇히지 않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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