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나훈무용단 <쉬어가는 고개>의 한 장면. ⓒ 박나훈무용단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제35회 서울무용제>가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이사장 김복희) 주최로 11월 10일부터 30일 폐막식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0일간의 화려한 잔치를 열었다.

서울무용제는 1979년 시작해 한국무용계를 이끌어 온 축제의 장으로, 국내 최고의 무용인들이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등 다양한 무용장르를 ‘경연’의 형태로 펼치는 특색 있고 의미 있는 행사다.

올해는 ‘경연대상부문’에 ‘Dancing Park Project’, ‘류무용단’, ‘백영태발레류보브’, ‘윤명화무용단’, ‘한칠 소울발레단’, ‘R.se Dance Company’, ‘박나훈무용단’, ‘고경희무용단’의 8개 팀이 대상, 우수상, 안무상, 연기상 등을 놓고 경쟁했다. ‘자유참가부문’에는 ‘한정미댄스프로젝트 점선면’, ‘김지안발레단’, ‘한오름무용단’, ‘안정훈무용단’, ‘고블린 파티’, ‘댄스 컴퍼니 MYTH’ 6개팀이 올라와 내년도 <서울무용제>의 경연대상부문의 자동출전권을 두고 경연을 펼쳤다.

11월 27일과 28일에는 박나훈 무용단의 <쉬어가는 고개>와 고경희무용단의 <곱사나비>가 공연되었다. <쉬어가는 고개>(안무 박나훈)는 인간의 휴식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다양한 춤사위와 장치로 표현했다. 무대 양쪽에 커다랗게 놓인 회색 벽과 그 속에 아주 작은 네모로 조금씩 뚫려 있는 창문은 현대사회와 인간내면의 폐쇄성을 상징한다. 그 속에서 억지로라도 쉬어보려는 것처럼, 알록달록 소망 혹은 꿈이 펼쳐질듯 한 무지갯빛 해먹을 걸쳐놓고 여섯 무용수가 깊숙이 앉아 쉬고 있다. 매미소리가 들린다.

표정은 무표정이다. 일순간의 고독이나 느낌조차도 없는 듯한 표정들, ‘피로감’이 극대로 몰려온 표정들이다. 왼쪽 벽의 문에서 상체를 드러내고 흰색 상의로 머리와 팔을 감싼 한 남자가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들어온다. 자세와 모습자체가 무척 괴롭다. 쉬고 있던 한 남자가 해먹을 풀어서 각 무용수의 목에 포승줄처럼 한 바퀴 두른다.

해먹을 두르고, 앉아서 쉬어야 할 해먹을 목에 밧줄처럼 두르고, 쉬지 못한 채 그들은 제각각의 춤을 춘다. 매미소리가 점차 금속성의 사이키한 소리로 변하면서 강렬한 비트와 함께 움직임에 템포감을 더한다(음악 양용준). 그러더니, 한 명이 예수 혹은 선지자(주역 김범호)처럼 해먹을 망토로 온몸에 풍성하게 걸치고 공중에서 노란 꽃가루가 뿌려지고, 여자무용수(주역 홍승연)가 그를 에워싸며 춤을 춘다.

다른 무용수들의 해먹까지 온몸에 온통 칭칭 감고, 노란 꽃가루까지 둘러있으니 흡사 마을어귀의 서낭당 같다. 그를 둘러싸고 여자무용수는 마치 무당처럼 빙빙 돌고 발을 사뿐사뿐 작두를 타는 것 같기도 하다. 무대 오른편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거대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반대로 우리모습의 명암은 벽면가득 외로운 그림자로 비추인다. 한참을 그 빛을 바라보며 앉은 채 어쩌지도 못하는 모습이 우리는 과연 휴식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결국, 그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갔지만 말이다.

▲ <쉬어가는 고개>는 현대인의 휴식을 주제로 '해먹'을 장치로 사용했다. ⓒ 박나훈무용단


박나훈 무용단의 <쉬어가는 고개>가 현대인의 ‘휴식’이라는 주제를 압축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했다면, 고경희 무용단의 <곱사나비>는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상처를 등에 달린 ‘혹’으로 상징하고 13명 무용수가 전체 4장의 이야기전개로 펼쳐내며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을 주었다. 투명장막이 무대 앞쪽으로 드리워진 채, 왼쪽 편에 곱사등이와 여인이 있다. 등이 굽은 채 장막에 갇힌 모습이 무척 힘겨워 보인다. 곱사등이가 선 왼편과 오른편 건장한 남자무용수들 사이에는 서로 오가지 못한다.

등의 한보따리 짐이 무거움을 느낄 때, 한 여인 역시 한 많은 한숨을 토하며 무대 한가운데서 쓰러져 있던 몸을 일으킨다. 하늘하늘 흥인 듯, 눈물인 듯, 넘실대는 춤가락에 취한다. 첼로의 애절한 선율과 강한 장구장단이 춤에 흥취를 더해준다(음악 김철환). 여인 혼자의 춤은 일곱 명 여자무용수와 네 명 남자무용수의 군무와 합해져 점점 힘이 생기고 흥겨워진다.

여인이 곱사등이의 굽은 등에서 붉은 피를 하염없이 꺼낸다. 곱사등이(주역 박정태)의 등에 엮인 붉은 천이 끊임없이 여인(주역 정다운)의 마음을 짓누르며 그녀는 그 피를 멀리서 긴 줄로 잡아매며 다 빼낸다. 곱사등이는 훌쩍, 털어버린 자신의 짐이, 이상하게도 어색하다. 곱사등이 본연의 모습이 차라리 자연스러웠다는 것을..그래도 마지막 꿈을 펼치며 여인과 곱사등이는 하나가 되어 훨훨 나비처럼 날아오른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것처럼 슬프게 울더니 곱사등이는 저편 자신의 장막 안으로 들어간다.

이 날 공연의 두 작품 모두 현대인의 소외와 불편함, 꿈을 소재로 벽과 해먹, 붉은 천이라는 장치를 사용해 잘 표현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주제표현과 전개에 걸맞는 음악의 밀도 높은 힘과 장면과의 매칭으로 작품의 표현력이 더욱 상승되었다.

하지만, 이날 공연된 <쉬어가는 고개>의 양용준감독과 <곱사나비>의 김철환감독은 각각 2009년과 2007년 서울무용제 음악부문 수상자인 때문인지, 올해 제35회 서울무용제에서 음악상은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미술상은 ‘고경희무용단’ <곱사나비>의 김철희가 수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무용음악가의 수가 적다면 당연히 재수상을 할 수 있는 것이고, 활동하는 인원이 적은 상황이라면 분야를 독려하기 위해서라도 조금 부족해도 인재를 발굴해 새로운 수상자를 배출해야 되지 않겠는가. 공중파TV 연말 시상식에서 작년 대상 수상자가 올해도 또 수상하고 독식을 하는 것은, 수많은 연예인 중 시청률을 좌지우지하는 몇 안 되는 이들의 영향력과 공로를 인정해 대상을 수여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그 분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것이다.

‘상’이라는 것은 잘한 사람에게 줄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잘했으니 앞으로 잘하라고 줄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음악이 무용, 연극, 오페라의 기반으로 ‘창작’ 부분에서 기여한다면, 그 ‘창작’의 부분을 크게 독려하고 인력을 발굴해 중요성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기존의 음악을 구성한 무용과 창작음악과 함께한 무용은 분명히 작업의 방향과 그 힘이 다르게 느껴지고 전달력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한편, <제35회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문 대상에는 ‘한칠 Soul발레단’의 <질주-G minor>(안무 한칠>, 우수상에는 윤명화무용단 <기오헌(寄傲軒)의 눈물>(안무 윤명화)이 선정되었다. 대상 1,000만원, 우수상과 안무상 수상자에게는 500만원, 남녀연기상 수상자 6인에게는 각 100만원이 수여되었고, 자유참가부문에서 최우수단체상을 받은 ‘한정미 댄스 프로젝트’의 <점선면>(안무 한정미)은 차기 제36회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문에 자동선정단체로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안무상은 '르씨 댄스 컴퍼니'의 <마음(MAUM)>(안무 김동규)가 차지했다. 남자 연기상은 ‘류무용단’ <달의 비명>에 조승열, ‘르씨 댄스 컴퍼니’ <마음>의 천종원, 백영태, ‘발레 류보브’ <데미안>의 박기연이 공동수상했다. 여자 연기상은 ‘고경희무용단’ <곱사나비>의 정다운, 르씨 댄스 컴퍼니‘ <마음>의 김서윤, ‘한칠 솔(Soul)발레단’의 <질주-지 마이너>의 연보라가 함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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