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야금 명인 황병기(82). 오는 4월 30일 이대 삼성홀 'Right Now Music 2016'에서
그의 전설적인 창작곡 '미궁'을 6년만에 소프라노 윤인숙과 라이브 연주한다. (사진 = 문성식기자)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봄인데도 이따금 쌀쌀하다. 변덕을 부르는 날씨 중에 인터뷰 날인 지난 4월 25일 날씨는 맑았다. 우리시대의 가야금 명인, 창작국악의 대부 등 여러 수식어가 부족한 우리음악계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스승인 황병기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81)를 만났다.

서울 북아현동 한 골목의 하얀 3층집, 1층엔 부인 한말숙씨(86)가 주로 지내고, 황병기는 2층에서 지낸다. 정악, 산조, 개량 가야금이 한 대씩 놓여있는 응접실이 있고, 한쪽 편에는 여러 대의 가야금이 벽에 세워져 있고, 악보와 함께 연습하는 가야금 한 대는 바닥에 놓여진 작은 연습방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Right Now Music 2016'에서 선보이시는 <미궁>으로는 2011년 LG아트센터 '달 항아리' 단독콘서트 이후 6년만이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특별한 소감이 뭐 있나. 그저 불러주면 연주하고, 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 뭐(웃음)."

-<미궁(迷宮)>은 그 기괴한 성악 소리와 가야금 특수주법 등으로 초연 당시 큰 화제를 일으켰다. <미궁>은 어떤 작품인가?

"그래픽 악보를 처음 만들었지만, 그야말로 그림이라서 그걸 보고도 다른 사람이 연주는 못한다. 민속악에서 기둥을 세워놓고 그 기둥에 의해서 즉흥을 연주한다고 한다. <미궁>에도 8개의 기둥이 있다. 첫 번째는 '초혼', 두 번째는 '울음과 웃음', 그 다음이 '신음', 네 번째가 '신문기사 낭독', 다섯 번째는 '실성한 사람이 노래 부르는 것', 여섯 번째가 '바다 소리', 마지막이 '반야심경 주문을 노래 부르는 것'이다. 초혼은 탄생을 의미하고 마지막 반야심경은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 곧 죽음을 의미한다. 원초적인 인간, 문화이전의 인간의 한 주기를 그린 것인데, 종교적인 곡이기도 하지. 사람들은 주로 무섭다고 하는데, 아마 익숙하지 않은 것,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1975년 '공간사' 주최로 명동국립극장에서 열린 현대음악제 'Space75'에서 무용가 홍신자와 작곡가 황병기의 연주로 초연된 <미궁>은 전통연주법이 아닌 미세한 트레몰로와 활 튀기기, 가야금 몸통 두드리기, 거문고 술대로 뜯는 등의 현대적 연주법에, 인성 역시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울고 웃고 구슬프게 신음하는 소리로, 초연당시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21세기인 지금 듣기에도 초현대적인 작품이다. 이번 'Right Now Music 2016'에는 윤이상의 제자인 소프라노 윤인숙과 연주한다. 남북관계에도 관심이 많은 그녀와는 평양 공연 때도 함께 연주했고 음반도 함께 냈다. 

황병기의 <미궁>에는 일명 '미궁괴담'이 존재한다. 며칠 전인 지난 4월 21일, 15년 만에 '스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시된, 야밤의 고교를 배경으로 한 국산 공포게임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은 15년 전 당시부터 지금까지 매출 25억을 달성한 유명한 게임인데, 그 OST로 황병기의 <미궁>이 쓰이며, "작곡가가 자살했다", "미궁을 들으면 미쳐버린다" 등의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한 포탈에는 층간소음 퇴치에는 황병기 '미궁'의 기괴한 소리만한 것이 없다는 내용까지 실로 미궁의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대단하다. 

-법대를 다니셨는데, 가야금 명인이 되셨다. 가야금의 어떤 매력에 빠지신 건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법대를 다니다가 가야금을 한 줄 아는데, 그게 아니고. 나는 중학교 때부터 가야금을 했지. 부산 피난시절, 피난학교 근처에 가야금하시는 선생님이 있었다. 가야금이라는 악기를 실물로 처음보고 소리도 처음 들어본 건데 "이건 내가 꼭 배워야겠다" 생각했지. 난 사실, 국사시간에나 가야금이란 말을 들었지, 가야금이 옛 삼국시대 악기인 줄만 알았어. 그 때 학교 음악수업에는 가야금이라는 말이 나오지도 않거든. 그때 가야금을 직접 처음 본거다." 

-운명처럼 가야금을 만나셨군요. 그런데 왜 음대에 안 가셨어요?

"그 때는 음대에 가야금이 없었지. 가르쳤었어도 내가 아마 안 갔을 거야. 딱 굶어죽는 걸 내가 어떻게 가. 그때는 가야금하다가는 굶어죽어."

-그러면, 요새도 연습을 하시는지요?

"요새도 연습을 하지. 연주라는 것은 육체가 50프로야. 악기 하는 사람은 반은 스포츠맨과 다름없어요. 연습 안하다가 오랜만에 하면 악기는 손가락 아파서 못해. 요새는 오후에 한 시간정도 연습해. 젊었을 때는 도전하는 기분으로 연주하지만, 요새는 좀 다르지."

팔십의 나이에도 여전히 연습을 하신다는 말씀에 '역시 가야금 명인답다'라는 생각이 든다. 작곡가는 정신으로 하지만, 연주자는 몸으로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시니,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황병기 선생님이야말로 몸과 정신 뼛속까지 모두 예술가가 아닌가. 

-가야금 창작곡을 작곡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당시에 음악만 전통음악을 연주했지, 문학이나 시, 미술은 계속 창작을 하잖아. '왜 음악에서는 새로운 것이 안 나오나'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가.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내가 굉장히 좋아해서, 그걸 우리 전통음악 스타일로 살려보자 해서 가곡을 썼어. 그 곡에 반응들이 좋아서 그 다음엔 박두진의 <청산도>를 가곡으로 썼지. 그런데, 내가 작곡한 가곡을 당시에 서울음대 김경배씨만 부를 수 있었는데, 군대를 갔지 뭐야. 근데 생각해보니까 난 가야금을 하잖아, 자꾸 가곡만 쓸 이유가 있나. 그래서, 가야금곡으로 돌린 게 1962년에 작곡한 나의 첫 번째 가야금 창작곡 <숲>이야." 

-처음 작곡한 가야금 곡 <숲>이네요. 지금 음반이 있나요? 

"지금도 연주되고 있고, 내 곡 중에 <숲>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박두진의 시 <청산도> 중 1절을 가곡으로 작곡한 것을 가야금 곡 <숲>의 1장 '녹음'으로 바꾸었고. 그 시의 1절 마지막이 울어오는 뻐꾸기로 끝나. 그래서 2장이 '뻐꾸기'가 된 거야. 3장 '비'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마지막 4장 '달빛'은 다시 돌아와서 조용하게 끝나지. 그게 '침향무'라는 음반에 실려 있는데, 그 음반이 지금도 제일 잘 나가." 

첫 가야금곡 <숲>을 작곡한지 11년 만인 1973년, 그는 두 번째 가야금 창작곡 <침향무>를 작곡하기에 이른다. 침향무에는 전통주법에서는 가야금 현을 누르기만 했던 왼손이 이동해 오른손과 함께 현을 뜯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현대주법이 개발되었다. 

"<침향무>를 쓰면서부터 새로운 주법이 곡에 적용되고, <미궁>은 75년에 작곡했지. 그 때 창작열이 왕성했던 것 같아. 1974년 내가 38살 될 때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되면서, 그 해에 유럽순회독주회를 떠났거든. 상당히 활발했지. 그런데, 나의 이런 가야금 현대주법 작곡이 갑자기 된 것이 아니거든. 내가 60년대부터, 더 거슬러 올라가 50년대 말부터 서양의 현대음악에 굉장히 관심을 가졌어. 내가 당시 가지고 있던 음반의 대다수가 LP인데, 모두 현대음악이야. 제일 좋아하는 곡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이지. 개인적으로 백남준, 존 케이지 등을 알게 되었고, 60년대서부터 그러다가 75년에 <미궁>을 썼지."

-백남준, 존 케이지와의 인연을 좀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68년도에 백남준의 누나가 나에게 가야금을 배웠어. 그리고 백남준을 통해 존 케이지를 알게 됐고." 

▲ 서울 북아현동 골목의 하얀 3층집 그가 머무는 3층엔 각종 가야금과 읽을 책이 가득 놓여있다.
(사진 = 문성식기자)


-그럼, 존 케이지의 공연을 직접 보신 것이 있나요?
"'일렉트릭 이어'(Electric Ear)'라고 아마 모를 거야. 존 케이지가 뉴욕 어느 디스코텍에서 연주했을 때였는데, 무지무지하게 사람들이 많이 갔어. 나도 표 사서 들어갔지. 사람들이 200m나 줄 서 있었어. 존 케이지가 무대에서 두 시간동안 장기 두는 거야. 우연성 음악. 상당히 재미가 없었어(웃음). 왜냐하면, 장기판 밑에 전깃줄이 달려있고, 팻말이 이동할 때마다 전류가 달라지니까 소리도 달라지고, 거기에 연결된 추상적인 영상도 달라지는 거지. 음악소리는 계속 모터 돌아가는 소리 비슷해. 한 두 시간정도 하는데, 끝날 때쯤 되니까 사람들이 거의 갔어. 그런데, 존 케이지는 관객들이 나가는 것에 개의치 않아. 계속 장기만 두는 거야. 백남준이 나를 잠깐 소개하니 나랑 인사는 잠깐 하고서도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장기는 계속 두는 거야. 그 후에 존 케이지가 서울에 왔을 때 한번 다시 만난 적이 있지." 

어찌 보면 현대음악이 제일 '아방가르드 뮤직'으로서 컴퓨터의 등장, 발달과 함께 여러 음의 실험과 그것에 대한 반향이 즉각적일 수 있었던 시절에, 한국 현대음악과 국악의 선두주자로서 우리음악을 이끌 수 있었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황병기의 숙명, 운명이 느껴진다. 

-현재 'ARKO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의 추진위원장으로 4년째 활동중이시다. 한국창작음악계의 거목으로서 우리 한국의 창작음악이 '이래야 한다'하는 방향성이 있는지? 
"내가 추진위원장 하기 전까지 아창제는 서양음악만 했었지만, 내가 위원장 된 이후로는 국악부문도 생겼어. 그런데, 딱 분리되는 것만은 아니고, 양악부문에서도 국악기를 얼마든지 끌어다 쓸 수 있고. 반대로 국악부문에서도 양악기를 써도 돼. 특별히 우리음악이 '이래야 한다'라기 보다는 아창제는 다양한 창작음악의 저변확대를 위한거지. 나는 추진위원장이고, 심사위원단은 따로 있어. 그런데, 아창제를 관현악곡 공모로 하는 이유는 작곡가들이 관현악곡을 써도 돈이 많이 들고 연주기회가 적잖아. 작곡가들에게 당선금 600만원도 지원해주고, 관현악곡 쓸 수 있도록 작곡가들을 밀어주는 거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공연이나 다른 계획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내 나이가 팔십이거든? 젊었을 때부터 나는 계획을 세워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냥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엔가 죽는 거야. Sooner or later. 또, 나는 야망을 갖고 이런 사람을 싫어해.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살다가 죽는 거지."


그의 말씀이 꼭 <미궁>의 일곱 기둥 같은 같다하니, 재미있는 예화를 덧붙이신다. 

"우는소리와 웃는 소리는 번역을 안 하거든. 왜 안 하느냐. 그건 언어 이전의 소리야. 신음소리도 번역할 필요가 없어. 허기야 뭐 옛날에 농담에, 어느 미군부대에 있는 사람이 '아이고 아이고' 하고 우니까 미군이 '어디 가려고 하느냐(Where are you going)?'고 물었다지만, 웃는 소리, 울음소리, 신음소리는 번역할 수가 없어." 

언어 이전의 소리, 예술, 음악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음악언어에 사람 목소리 중 가장 원초적인 울음과 웃음을 넣어 만든 곡 <미궁>. 그 <미궁>을 초연 41년 만에, LG아트센터의 그가 직접한 연주 6년 만에 우리 시대의 가야금 명장 황병기와 소프라노 윤인숙의 <미궁> 라이브로 만날 수 있다. 이번 공연에 임하시는 소감을 여쭤보자, "그런 거 없어요. 나는 나대로 연주하고, 윤인숙씨는 그분대로 최선을, 각자 최선을 다할 거"라는 그의 지적이면서도 담대한 선비 같은 면모가, 더욱 'Right Now Music 2016'에서 펼쳐질 이 시대 최고의 현대음악의 퍼포먼스를 기대하게 만든다.

현대음악을 하루 동안 연주하는 마라톤콘서트인 'Right Now Music 2016'가 이번 주말인 4월 30일 토요일,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펼쳐진다. 국악의 거장 황병기, 아코디언의 대부 심성락과 반도네온 고상지, 피아노 박종화, 가야금 박경소와 미국 뉴욕의 인기 현악사중주단 '플럭스 퀄텟'과 타악기 그룹 '만트라 퍼커션' 등 이 시대 동서고금이 만나는 우수한 음악의 향연이 오후 2시부터 저녁8시까지 장장 6시간동안 펼쳐진다. 

그간 마라톤콘서트 'Right Now Music'는 2014년과 2015년, 문화역서울284에서 뉴욕의 작곡가그룹 '뱅온어캔'의 상주연주단체인 'Bang On A Can All-Star'(2014) 'Alarm will Sound'(2015) 가 필립 글래스, 마이클고든, 존 아담스 등 현대음악가의 곡을 연주하며 국내 현대음악 애호가들 팬들을 감동시킨 바 있다.

mazlae@daum.net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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