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3' 체임버 콘서트 'Pianoscope'에서 명징하고도 색채감 넘치는 연주를
선보인 말레이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메이 이 푸. ⓒ 서울시립교향악단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현대음악의 진정한 향연, 진은숙의 아르스노바가 지난 10월 3일과 8일 공연되었다.

3일 체임버홀에서 열린 체임버콘서트 'Pianoscope'와 8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관현악콘서트 'Fantastical Tales' 모두 말레이시아 출신 세계적 피아니스트 '메이 이 푸'의 강렬하고도 섬세한 기교가 이끌어갔던 공연이 되었다.

3일의 'Pianoscope' 전반부는 피아노를 전면에 내세운 단순하고도 집중력 있는 프로그래밍이 돋보였다. 쿠프랭 <틱톡쇽>, 진은숙 <피아노 에튀드 5번>, 버르토크 <밤의 소리>, 메시앙 <아기 예수를 향한 스무 가지 시선-10번>까지 짧은 소품을 이어서 20분간 연주했다. 바로크 시대 쿠프랭의 시계태엽을 표현한 단아한 반복적 음형의 부터 20, 21세기 현대음악 작품들의 톤 클러스터와 복잡해지는 구조를 점층적으로 발전하는 연결성으로 선보여 집중감을 주었다.

전반부 마지막 조지 벤저민(1960~)의 <동이 틀 무렵>은 앞의 피아노곡의 음형이 15인 악기 스펙트럼으로 펼쳐지며 해가 뜰 무렵의 긴장감이 어슴푸레한 빛으로부터 점차로 짙어지는 강렬한 음의 물결로 이어지는 멋진 곡이었다. 작곡가가 메시앙 제자라는 면에서 앞 곡들과 자연스러운 연장선에 놓이기도 했다. 후반부 첫 곡 마르코 니코디예비츠(1980~)의 <리게티와 스트라빈스키가 함께하는 뮤직박스/자화상>은 오마주로, 거장들의 특징에 젊은 작곡가의 경쾌함과 세련됨이 가미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 안토니 헤르무스는 매우 열정적으로 긴장감과 박진감 넘치는 지휘로 음악의 굴곡을 만들어내었다.
ⓒ 서울시립교향악단


이날 프로그램의 대미는 마이클 도허티(1954~)의 독주 피아노와 앙상블의 위한 <리버라치의 무덤>이 장식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도허티가 브와지오 발렌티노 리버라치라는 미국 피아니스트를 추모한 이 곡은 빅밴드 재즈풍의 뼈대에 현대음악 편곡이 가미되어 현대음악은 어렵고 딱딱하다는 기존의 통념을 경쾌하게 뒤집어 주었다. 메이 이 푸는 전반부 프로그램보다 더 넘치는 열정과 집중력, 리듬감의 강조로 앙상블과 호흡하며 아시아 초연의 이 작품을 우리에게 멋지게 소개해주었다.

1악장 '라인스톤 킥스텝'은 어린이 관객들도 부기 리듬에 고개를 까딱까딱 거리며 흥미로워했다. 마지막 글리산도의 종결이 대담하다. 2악장은 차임벨과 피아노솔로의 느린 싱코페이션로 숙연하게 시작됐다. 이어 바이올린의 글리산도와 초고음역의 선율, 피아노의 아르페지오가 섞이며 숙명적 느낌의 종결을 맺는다.

4악장 '칸델라브라 룸바'는 클래식 무대에서 마치 캬바레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는 이 날 공연의 핵심이었다. 신나는 트럼펫 선율과 리듬, 피아노의 과감한 하행 아르페지오 등 드라마 음악 같은 의외성과 인생의 축제장 같은 분위기에 전체작품이 끝나자 관객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와 브라보를 보냈다. 4악장이 다시 앙코르로 연주되었는데, 다시 들으니 무척 수학적이고 치밀했다. 주제 동기가 다양한 악기에 쉴 새 없이 반복되며 열정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인생의 격투장과 슬픔, 난장과 배짱 있는 한 인간을 표현한 듯하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7일의 관현악콘서트는 기존 21세기 현대음악과 동시대 활동 작곡가의 곡을 소개로 했던 아르스노바의 과거 공연들과는 대비를 이루었다. 두 번째 올리버 너센의 <저기 보이는 성으로 가는 길>(1990), 마지막 히나스테라의 피아노 협주곡 1번(1961) 외에는 랴도프, 야나체크, 드뷔시의 작품이었는데, '동화 음악'을 주제로 통일성을 주었다.

첫 곡 아나톨리 랴도프의 <바바 야가>와 두 번째 너센을 지나 세 번째 야나체크의 <오페라 '교활한 작은 암여우' 모음곡>(1923)은 낭만풍의 우아한 오페라를 새롭게 관객에게 소개해 주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후반부 첫 번째 드뷔시의 <이베리아>(1912)는 드뷔시 특유의 6음 음계의 증음정과 고대 제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화성 진행 등으로 우아하고도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날 공연 역시 지난 3일 공연에 이어 메이 이 푸가 연주한 마지막 히나스테라의 <피아노 협주곡 1번>(1961)이 압권이었다. 12 음렬과 톤 클러스터, 16분음표 32분음표 이상의 빠른 리듬, 꾸밈음 등 최고의 현대음악 기법들을 그녀는 다이내믹과 완급조절로 전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곡의 구조를 형성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녀가 포르테로 피아노를 칠 때 동시에 베이스 드럼 주자도 타격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싱크로니제이션과 메이 이 푸의 응축된 힘이 대단해서, 마치 그녀가 피아노를 치면서 북까지 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강렬함과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관객에 따라 이번 관현악 콘서트의 호불호는 갈렸다. 최전방 현대음악을 국내에 소개해 온 아르스노바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관객들은 낭만풍의 음악으로 반 이상을 채운 프로그램에 다소 실망했다는 반응이다. 반면에, 새로운 주제로 낭만 시대까지 넘나들며 흔히 연주되지 않는 레퍼토리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아르스 노바(Nova, New)'의 역할로 얼마든지 의미 있다는 반응들도 있었다.

문제는 연주의 몰입도였다. 이날 연주곡 중 두 번째나 마지막 곡은 현대음악의 소개나 연주 측면에서 아주 좋았다. 하지만 낭만 시대 음악들은 '동화 이야기'라는 부제를 살리지는 못했다. 상임 지휘자의 부재 탓인가. 연주에 집중도나 깊이가 다소 약했다. 현대음악은 관객에게는 생소함을 근거로 오히려 약간의 연주 매무새로도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겠지만, 낭만풍의 밀도 높은 음악이라면 훨씬 풍요롭게, 연주자들 모두 깊이 느끼며 공감하는 연주가 필요했다.

10년을 지나면서 아르스노바 시리즈는 더욱 색채감과 다이내믹이 넘치는 선곡과 시도로 여전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전의 아르스노바 시리즈가 20세기 21세기 현대음악에 대한 한국에서의 토양을 다지는 역할이었다면, 이번 2016 아르스노바 3, 4 에서도 보인 바, 다가오는 10년은 현대음악 작곡가 계보, 연주자시리즈, 유럽 외 미국 아시아 작곡가나 연주자에 대한 소개 및 다양한 주제로 변화될 듯하다.

현대음악 연주회가 아르스노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작곡단체의 창작음악회와 다른 '진은숙의 아르스노바'의 특징이라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진은숙 작곡가의 안목과 인맥으로 엄선된 역사적 맥을 잇는 현대음악 프로그램과 서울시향의 뛰어난 연주력에서 만들어진 고품격 클래식의 현장으로서 현대음악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향을 사랑하는 한 팬으로서, 서울시향이 너무 워커홀릭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찾아가는 음악회에 청소년 음악회, 마티네 콘서트, 거기에 정기연주회, 아르스노바까지, 너무나 할 일이 많다. 한 공연에서는 하나만 잘 전달해도 되지 않는가. 국내 클래식계를 현대음악을, 서울시향이 아르스노바가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너무나 응축되고 타이트한 프로그램보다는 하나하나 진정으로 즐기며 관객에게도 새로운 음악을 천천히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를 주었으면 좋겠다. 10년 전처럼 말이다. 


mazlae@daum.net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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