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ject21AND의 작곡가이자 Ensemble21AND 지휘자인 김승림.
이날 앙상블의 최대한을 이끌어내며 연주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project21AND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지난 11월 19일 저녁 7시반, 한남동 일신홀에서 project21AND의 project21AvaNt-garDe 2013 공연이 열렸다.

project21AND(대표 박상찬)는 한국 작곡가들이 좋은 아방가르드 작품들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취지로 2012년 12월 결성해, 연주, 음반, 악보, 비평 등의 10년 프로젝트를 계획 중인 현대음악 작곡그룹이다.

단체 이름 맨 뒤에 위치한 AND는 avant-garde에 숨어있는 a,n,d의 조합으로, 무언가 ‘그리고’, 그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국내에 꽤 여러 현대음악 단체와 학회들이 있지만, 또 비슷한 단체 하나가 생긴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들의 첫 번째 음악회인 ‘project21AvaNt-garDe 2013’ 공연은 표를 사기 위한 긴 줄 행렬로 시작되었다. 단체 결성의 첫 연주회이고, 한 명도 아니라 네 명 작곡가의 작품연주회 인만큼 그 제자들과 지인들로 북적였다. 좌석이 매진되어 입석표까지 발행하느라 공연 시간을 10분여 넘겨 시작했다. 공연장 내 계단에도 관객들이 자리를 메우고, 문입구에도 서서 관객들은 어떤 프로젝트가 펼쳐질지 기다렸다.

▲ 공연장 로비에서는 이날 연주된 작품들의 악보를 구매할 수 있었다. ⓒ project21AND


공연장 로비에서는 이날의 일곱 작품들의 악보를 팔고 있었다. 흔히 ‘그들만의 음악’이라 여겨지고, 현대미술은 작품의 구매와 가격책정이 정확한데 비해, 악보나 음원 구하기가 어려운 현대음악을 더욱 일반에 알리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정성스럽고 깨끗하게 사보된 악보가 한 작품 당 2만원씩 여러 권 작품별로 놓여 있었는데, 학생들에겐 특별히 반값 할인혜택이 있었다. 작은 출발이지만 참신한 의지가 돋보였으며, 스스로의 자구책으로 현대음악의 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라 느껴졌다.

연주회는 네 명 작곡가의 일곱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작품 임승혁의 'EINMISCHUNG'(2013)은 클라리넷과 오보에를 위한 작품으로 두 악기간의 다이내믹 대위법(dynamic melody counterpoint)‘이 인상적이었다. 제목이 의미하는 '간섭'이라는 컨셉을 음량(Volume)차로 선율을 만드는 일종의 전자음악적 아이디어였는데, 한 음의 반복만으로 시간을 이어나가며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평소 작곡가의 작품 특색인 한 요소의 반복으로 곡을 완성시키는 집요함이 드러나며 좋았다.

다음으로 김승림의 ‘Mi(美) in the Colosseum'(2011)이었다. Michael Ende의 소설 MOMO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내용 중 콜로세움의 웅장함과 아름다움(美(미)), 그리고 여치의 울음소리를 중심음 '미'음으로 표현했다. 시작부에 공과 차임벨의 강렬한 타격으로 시작해 피아노 저음 ’미‘ 현에 물체를 덧댄 ’prepared piano'로 음의 고동이 시작되더니 증음정의 상행 아르페지오로 이어진다.  

작곡가의 의도대로 피아노로 한편의 연극을 보여주었고, 연극과 현실의 불일치, 그 과정을 통한 ‘성숙’을 표현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내적 고통인 증음정 아르페지오를 한참 겪고 난 후 중심음인 ‘미’음으로 돌아와 다시 자신을 돌아볼 때, 그 머무름이 시간적으로 짧아서 작품을 좀 더 듣고 싶었는데 곡이 끝나버리는 아쉬움이 있었다.

▲ 김승림의 'Mi (美)in tjhe Colosseum' (피아노 김지연) ⓒ project21AND


김지향의 'Resonance'(2011)는 ‘공명’을 인간이 외부와 주고받는 영향으로 표현해, 한 악기에서 다른 악기로 진동이 옮아가는 면을 트레몰로, 크레센도, 피치카토, 고음 하모닉스, 강한 스타카티시모 등으로 잘 표현했다. 가야금은 전통주법보다는 급격하고 가는 트레몰로와 뜯는 주법으로 그 공명을 악기 간 넘겨주는 중간자역할로 쓰였다. 여기에 작곡가가 한국작곡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전통기법을 쓰지 않더라도 이미 악기의 특성을 살려 한국작곡가로서만이 할 수 있는 내용과 정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품 초반부는 간헐적인 음들과 관계성으로 눈으로 보는 것보다 귀로만 듣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중반이후 소리들이 점점 많아지고 거친 트레몰로, 타악기의 강한 사용이 많아지면서 점점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가 함께하고 악기 간 연결이 원활했다. 마지막에 지지직 라디오 주파수 맞추는 소리에 여러 채널과 아나운서 음성이 들리며 공명이 되는 과정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것이 인상적이다.

임승혁의 '인지'(認知)(2013)는 ‘호흡’을 컨셉으로 했다. 앞 작품 Resonance의 편성에 가야금이 빠지고, 플룻, 클라리넷이 더해져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피아노, 타악기의 일곱주자의 작품이었다. 각 악기들이 때론 각자, 때론 함께 트레몰로, 플라터 텅잉, 그리고 ‘크레센도’ 주법으로 총 7개 구간으로 호흡이 확대되는 과정을 표현했다.

마치 아기가 어른으로 점차 성숙되어 가면서 한 번의 호흡량은 많아지고 호흡 횟수는 줄어들듯이 7개 구간의 변화는 더블베이스가 알려주고, 각 구간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고 제스처는 점차 풍부해진다. 사실 작곡가의 프로그램 노트에 쓰여 있는 것처럼, 작품을 들으면서 호흡성에 대해 인지하거나 더블베이스로 각 구간이 변화되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만 작품의 의도는 이해될 수 있다.

▲ 임승혁의 'EINMISCHUNG'. 클라리넷과 오보에가 무대 양끝에서
마주보고 연주하는 공간감이 좋았다. ⓒ project21AND


또 한가지, 최근 몇년간 현대음악 기악앙상블 작품들에서 점묘적인 음향과 현악기 관악기의 크레센도를 많이 들을 수 있는데, 서로 다른 제목들이지만 마치 한 작품처럼 구별지을 수 없을 때 아쉬운 느낌이 든다. 이날 ‘Resonance'와 ’인지‘ 두 작품도 물론 가야금까지 분명 다르고 세부적 주법이나 서술방식이 다른 작품이었지만, 서로의 제목을 바꾸어도 될 정도로 크게 보면 비슷한 편성과 주법이 각자의 특징을 부족하게 하고 있었다. 현대음악 분야 중 특히 5-7인 정도의 기악작품들에 대해 생각해 볼 부분이다.

인터미션 후 첫 작품인 김승림의 'Dreaming Tenor'(2010)는 마지막에 양손을 사용해 활 두 개로 첼로의 저음 C현과 고음 A현 개방현을 연주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고 효과적이다. 무사가 쌍칼을 휘두른 후 양 칼집에 집어넣듯이 ‘꿈꾸는 자’의 마지막 단아함이 느껴졌다. 진행부에서는 첼로는 주로 A현 고음 포지션의 빠른 음형으로 저음을 탈출하고자 하는 특징이, 작곡가 자신이자 카운트 테너가 되고픈 테너를 표현했다.

다음으로 김지향의 'Moire II'(2013)는 금관악기와 일렉트릭 기타, 타악기 앙상블로 “동시대성”과 대중문화의 “저항성”을 표현했다. 타악기 심벌즈의 트레몰로, 트럼펫의 Wawa 이펙트, 색소폰 플러터 텅잉 등의 주법 등에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의 도입부 선율이 간헐적으로 반복되고 변주된다. 이와 함께 중간 중간 들리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S.Zizek 연설, T.Adorno의 ‘Popular Music and Protest' 인터뷰, 대운하를 포기하겠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선언, 추락하는 비행기의 ’Mayday' 외침, 채록민요인 노동요 등은 동시대성을 의미한다.

일렉트릭 기타의 음향만으로도 현대음악무대가 대중 문화적 색채를 풍겼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내용이 작곡의도대로 동시대성을 표현한다. 제목의 ‘Moire'는 규칙적 패턴이 겹쳐졌을 때 주기의 차이에서 생기는 줄무늬를 의미한다. 이것을 일정한 박 주기의 서로 다른 리듬 층이 겹쳐 만들어내는 소리의 물결무늬로 표현했지만, 사실 귀로 그 패턴을 따라잡기보다는 여러 악기들의 다양한 움직임이 빚어내는 해프닝에 주목하기만 해도 작품은 재밌다. 또한 김지향은 이날 두 작품에서 모두 라디오소리를 사용해 효과를 준 것이 인상적이다.  

▲ 김정훈의 'Ironische Ironie'.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시대를 살아가는 아픔과 사명감을
악기간 격렬한 충돌과 대치로 표현했다 ⓒ project21AND


김정훈의 'Ironische Ironie'(2013)는 이사야서의 한 구절에서 착상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해도 못 듣는 상황, 이것을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시대를 살아가는 아픔과 사명감 등으로 표현했다. 여러 악기가 협화와 불협화를 오가며 격렬하게 대치한다. 바이올린의 고음 하모닉스, 트레몰로와 크레센도, 쥬테와 상행 글리산도, 피아노 저음의 빠른 리듬, 클라리넷 고음의 끝없는 외침 등. 서로 숨막히게 자신의 이야기를 빠르게 토해내는 모습이 부딪히며 모순과, 불안, 소외마저 느끼게 된다. 빠른 패시지 사이에 놓인 느린 패시지는 상대적인 편안함과 동시에 종교적인 느낌을 주며 주제가 잘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현대음악 작곡 학회와 협회, 작곡 동인, 그룹 등이 꽤 있다. 지금도 생겨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 생길 것이다. 그 속에서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을 표면에 붙이고 전면에 나선 project21AND. 물론 이 날 일반인이기보다는 작곡으로 연관된 이들이 관객 대부분이었겠지만, 연주홀의 통로까지 가득찬 인원들이 모두 그 아방가르드 정신을 함께했다.

적어도 선생님 음악회라서 어쩔 수 없이 왔었고, 억지로 들었던 음악회는 아니었다. 이미 다행히도 관객들, 현대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의 수준은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 우리의 귀가 다름을, 이 세상에는 여러 소리가 존재함을 알려야 한다. 이제 미술처럼 현대음악도 더욱 다양화되고, 더욱 적극적으로 사고 팔 수 있고, 공유되고 느낄 수 있게 되길 project21AND이 이끌어주길 바란다.


mazl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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